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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04. 2022

제발 좀 떨어져라 쫌!

고열과 전쟁 중

열... 열... 열...!!!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바로 '열'이 날 때다. 목이 아파도, 바이러스에 걸려도, 장염이 와도 열이 동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특히나 조심스럽고 두렵다. 기관 생활을 하면서 늘 달고 사는 감기와 다르게 불시에 찾아오는 열은 언제 봐도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그러니까 2월 2일부터 아프기 시작했으니 벌써 3일을 꼬박 채워가고 있다. 오늘 새벽엔 39도까지 펄펄 끓는다. 3시간 간격을 맞춰 먹이는 해열제 교차 복용도 전혀 소용이 없다. 심지어 점점 많아지는 콧물을 감당하기 힘든 녀석이 콧물을 삼킬 때마다 밭은기침이 이어지며 먹은 것을 다 토한다. 아침에 컨디션이 좋아보며 김에 흰 밥을 싸주었는데 그것도 토하고, 하도 먹은 게 없어 점심엔 식빵 한 조각을 잘게 잘라 주었는데 그것도 낮잠을 자다 토해버린다.


실제로 이렇게까지 아픈 적이 많지 않았다. 딱히 크게 아프거나 응급실에 간 적은 없다. 천만다행이라며 늘 조심하고 감사하며 키웠다. 하나, 이번 증상은 오래간다. 좀 다르다. 보초 서다 문득, 재작년 여름이 생각났다. 일주일 넘게 고열로 고생했던 그 돌발진의 경험이. 그때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 다 나았지만, 언젠가 또 올 수 있다고. 오늘 새벽 스치듯 그 말이 떠올랐다. 다시 온 것인가. 고열과의 싸움이. 다시.


이불 군데군데 얼룩이 남아있다. 방에는 시큰한 냄새가 진동한다. 얼마나 힘들까. 불과 몇 주 전에 내가 변기를 부여잡고 토하던 것이 생각나 마음이 아파 죽겠다. 다 큰 나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는데 녀석은 고작 다섯 살. 아프고 나서 1 킬로그램 가까이 몸무게가 빠졌다.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녀석이 숨 넘어갈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기침을 견디다 못해 토하고 나면 눈에 눈물이 그렁한다. 그럼 그럼, 아프지, 아프고 말고. 얼마나 힘들겠니. 안쓰럽고 슬프고 나한테 화도 나고 복잡하다.


하루 종일 열패치도 붙여보고 미온수 마사지도 해보고 해열제는 시간 맞춰서 먹이고 있는데도 열은 종일 여전히 39도 언저리를 웃돈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눈이 온다 하여 외출하지 않았을 거다. 세 개의 눈사람을 만들어 기념사진을 찍지도, 다음 날 같이 나가 1시간 동안 눈을 밟으며 산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하고 난 후 아이가 밤새 힘들어하니 죄책감에 얼굴이 굳는다. 좋은 마음에 했던 일이 모두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하는 선택은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놀고 싶어도 놀 힘이 없어 종일 티브이만 보던 녀석을 달래 방으로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잰 체온이 38.3도. 해열제를 먹이고 눕히니 그새 잠이 든다. 이제 두 시간 후에 다시 체온을 재 봐야 하는데 과연 열이 좀 떨어졌을까 모르겠다. 안 떨어진다면 또 다른 약을 교차로 먹여보고 기다려봐야겠지. 다행히 아직은 새근새근, 앓는 소리 없이 잘 자고 있다. 부디, 오늘 밤엔 열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전까지 나는

옆에서 곁을 지킬 것이다. 내 마음이 닿아 얼른 아이가 회복했으면 좋겠다.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언저리엔 부디 거친 숨소리와 마른기침이 잦아들었으면. 열도 뚝 떨어져 버렸으면. 그래서 내일 밝게 웃으며 아침을 맞이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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