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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n 02. 2022

그러니까 난 J라고

무계획에 무너져버린 소설쓰기

그러니까 요며칠 P가 아니라 J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사실 며칠 전에 한 달 동안 고심한 '글쓰기 수업' 관련 매거진의 목차를 하나씩 정리해 목표로 했던 10개의 꼭지가 만들어졌었다. 시간이 생길때 마다 한 꼭지씩 작성해서 브런치에 업로드하면 되는 것이었다.

애초에 쓰고자 했던 목표도 정확했고 나름의 방향도 정해져 있었기에 그냥 평소처럼 꾸준히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책을 읽고 있던 게 그만 화근(?)이었다. 술술 읽히는 소설인데다 이 소설의 원작이 '브런치 북'이었으며, 작년 '밀리의 서재' 전자책 프로젝트 수상작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소설'에 꽂히고 말았다. 소설? 그래 소설! 글쓰기 수업과 관련된 경험을 소설로 재구성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자, 욕심이 났다. 나도 잘 써보고 싶고, 뭔가 깊은 감동을 주는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애초의 '목표'와 '계획'이 모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기울어버리자 없던 충동성이 솟구쳤다. 일단 질러 버렸다. <백지의 수행평가>라는 글을 소설처럼 써서 올렸다.(지금은 내려버린) 수현, 지원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대사도 넣고 장면도 묘사하여 올려버린 것. 그런데 웬 걸. 그 다음이 문제였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작성한 이야기인지라 다음 장면이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왜? 그 다음은 뭐? 두 인물은 어째서? 하는 생각이 자꾸 맴돌고 글이 진척이 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한 달 가까이 고민한 목차가 삽시간에 사라지고, 아무런 계획없이 무대뽀로 '소설'이란 장르에 도전했으니 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개개인의 서사도 필요하고, 인물 사이에 긴밀하게 얽히는 사건도 촘촘해야 하며, 동시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해야 하는데 모두 희미했다. 고민이 없었으니 마치 안개가 자욱히  것처럼 뿌옇게만 느껴졌다. 글을 올리고도  참을 글을   없었다. 끝까지 해보자 싶어 몇번을 고민했지만 다음 장면에 개연성이 없었다. 그저 소설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을 .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나쳤다. 장르에 대한 무지가. 그리고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소설이 쓰고 싶다면 충분히 고민해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틀을 잡고 이야깃거리를 엮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계획이 정확히 세워져야만 글을 쓸 수 있다. 난, 그런 사람이다. 즉흥적으로 뭔가를 만들지 못하고, 반드시 '계획'이 있어야만 마음 편하게 움직이는 사람. 새삼 내가 P가 아니라 J형 인간이란 걸 몸소 깨닫는다. 계획이 없으니 방향이 없고, 방향이 없으니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


몇 번의 발행취소와 발행을 거치다 지금은 아예 발행취소를 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에버노트를 켰다. 처음에 내가 하고싶은 말은 '글쓰기 수업에 대한 경험'을 내 식으로 녹여 내는 것. 내가 만난 아이들의 소리를 진솔하게 기록하는 것. 꼭 소설로 구성할 필요 없다. 어쩌면 나와, 내가 만난 아이들은 이미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주연'이자 서로의 '조연'이니까.


<지금 우리 학교는> 매거진에 다시 '글쓰기 수업'과 관련된 글을 순차적으로 올릴 예정이다.

업로드는 아마도 목요일에서 금요일 사이.


꾸밈없이 솔직한, 우리의 서사가 녹아있는 글로 다시 태어나자.

고민한 것은 고민한대로

느낀 것은 느낀대로

기록 자체로 의미있도록.


Photo by Hanna Morr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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