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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Sep 30. 2022

3년 만의 체육대회

10월이다. 

누군가에겐 한 해에 흘러가는 쓸쓸한 가을의 초입이겠지만

학교에서는 가장 활기차고 활기가 넘치며 갖가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계절, 축제와 체육대회의 계절이 왔다. 더군다나 올해는 위드 코로나 이후 처음 맞는 탓에 기대감이 크다. 초등학교 4학년 때가 마지막 운동회였던 09년생 우리 아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설레고 각별하다.


나 역시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올해 체육대회와 축제를 대하는 자세가 그들과 꽤나 비슷한데 그런 행사를 좋아한다기보단 3년 간 담임을 하지 않는 탓이다. 학교에서 비담임은 너무나 자유로운 위치이지만 아주 가끔, 체육대회나 축제 같이 학교의 큰 행사 주간엔 아주 조금 외로운 게 사실이다. 3년 간 몸은 편하고 마음은 쓸쓸했던 시간이 지나고 올해는 다행히 지지고 볶으며 지내고 있는 아이들 덕에 외롭진 않게 되었다. 


요새 들어 아이들의 신경은 온통 '체육대회'와 '축제'에 쏠려있다. 팀별 계주 뽑기, 공연 오디션, 그리고 며칠 전엔 반티를 고르고 사이즈를 조사하고 주문까지 완료! 배송 중인 반티를 입게 될 수 있을지 중간에 사건도 사고도 많았지만 어쨌든 행사로 가는 길은 순항 중이다. 미우나 고우나 한 해 같은 반에서 생활하게 된 내 새끼들이 신나서 방방 뛸 모습을 생각하면 흐뭇한 마음이 밀려온다. 선생 하기 힘든 거친 세상이지만 기쁨과 감동은 의외로 소소한 곳에서 오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나는 어쩌다 보니 10년 만에 무대에 서게 되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위해 준비하는 깜짝 공연인데 엉겁결에 승낙을 해버리고 연습까지 한 바람에 무를 수가 없다. 은근히 관심받고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지라 죽이 될 것 같은 저주받은 몸뚱이를 이끌고 춤을 추기로 결정했다. 어쨌거나 뭐든 되겠지, 울 반 애들이 좋아해 주겠지, 하고.


그나저나 '텔미, 허니, 아츄, 애프터 라이크'를 이어서 춘다는데 몸이 마음대로 따라가지도 않는 데다 댄스 선생님의 동작이 머리에 입력되지도 않는다. 10년 전 신규 때에는 발령 동기들과 같이 매일 저녁 남아서 춤을 춰 겨우겨우 무대에 섰는데, 집에 가서도 찍어 놓은 영상을 돌려보며 수십 번을 연습했는데 이번엔 그럴 여유조차 없어 아주 많이 걱정이다. 심지어 뭘 얼마나 춤을 추었다고 근육까지 쑤시는지. 이런 내 춤을 애들이 좋아할까 싶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밀려온다. 


입술만 달싹이다 결국 하기로 마음을 굳힌 건, 뭘 하든 꼭 잘하는 사람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춤을 더럽게 못 추고, 노래를 썩 잘 부르지 못하더라도 일단 해 보는 것, 도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몸소 실천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담임 선생님이 몸치에 박치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무척이나 용기 있다는 것 자체를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


아이가 일찍 자는 요즘

오늘은 다운로드한 영상을 보며 연습을 해볼 수 있을까?


이제 일주일 남았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무척 떨리는 마음을 안고 매일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가을이다.

마음이 들썩이는 축제의 계절이다.

아이들의 마음처럼 내 마음도 울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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