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Apr 15. 2023

3/31 금 : 그 흔한 멘토링

어쩌면 더 특별한 무언가를 얻을지 몰라

마침 1교시가 없던 날

모처럼 여유가 생겨 차 한 잔을 타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중, '다문화 멘토링'이란 제목의 공문이 눈에 들어왔다. 올해 새롭게 맡게 된 다문화 교육 업무 때문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였다. 학기 초 업무 파악이 늦어져 꽤 괜찮은 사업 하나를 놓친 게 못내 마음이 걸렸던 터라, 망설일 틈이 없었다.


부랴부랴 문서를 뽑아 A에게로 달려갔다. '다문화 멘토링'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생각난 A는 작년에 내가 가르쳤던 다문화 가정의 아이.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선한 눈빛과 차분한 언행이 돋보이는 녀석으로 1년 간 나와 함께 국어를 배웠던, 나의 첫 제자다. 의사소통이 100% 되지는 않았지만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성실했던 녀석이라 기억에 많이 남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학교를 옮긴 것이 처음이 아닌데도, 또 다문화 가정의 아이를 만난 것이 처음이 아닌데도 유난히 A가 눈에 밟혔다. 담임 선생님께 대략의 사정을 듣고서는 더 신경이 쓰였다. 한국에서 (갑자기) 살게 되어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고 어려웠을 A의 모습이 마치 갑작스럽게 전근을 오게 되어 주변의 모든 상황이 바뀌어 매일매일 울며 적응해야 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인 국어 교육과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아예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국어 기초 방과 후 수업에 녀석을 추천했다. "선생님과 수업 끝나고 남아서 국어 공부하지 않을래?"라며 무모하게 내민 내 손을 잡아준 A는, 이 대책 없이 긍정적인 국어 선생님의 뜻을 1년 동안 가장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따라준 아이이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A의 국어 실력은 초등학교 2, 3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의 절반 이상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텐데 늘 고개를 끄덕이거나 열심히 받아 적으면서 수업을 들어주었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불러도, 방과 후에 불러도, 혹은 갑자기 회의가 잡혀 일정을 취소하게 되어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었다. 게다가 주어진 두 권의 문제집을 한 번도 밀리지 않고 풀어내기까지 했다. 솔직히 100점을 맞은 적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녀석의 '마음 가짐' 자체는 늘 100점을 웃돌았다.)


그런 A가 2학년이 되었다고 해서 국어 실력이 크게 나아질 것이란 생각은 사실 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또 한 번 새롭게 바뀐 학급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낯섦을 느끼며 여전히 교실 속의 일부로만 그림처럼 있을지도 모를 일. 아무 이유 없이 A를 도와주고 싶었다. 작년엔 국어 방과 후 수업이라 조금 딱딱한 교과 수업을 했다면 이번엔 멘토링이 아닌가. 이 멘토링은 교과 수업뿐 아니라 진로 지도까지 다방면으로 멘토링을 할 수 있었다. 한국어는 약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 하나는 남들보다도 뛰어난 A가, 자신의 그림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 줄 수 있지 않겠나.




잠시만 면담을 하자며 불러낸 A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A야. 선생님이 너랑 같이 멘토링을 하고 싶은데... 작년처럼 문제집만 푸는 건 아니고, 이번엔 그림책이나 동화책도 읽고 네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1년 간 함께 배우는 거야. 물론 약간의 문제집도 풀고...^^ 어때? 괜찮아?"


5초 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녀석의 입에서 "괜찮아요."라는 말이 나왔다.

1년 간 겪은 바로 녀석의 "괜찮아요."는 대부분 "좋아요."라는 뜻.


너무 기뻤다. 고마워, 고마워! 선생님과 멘토링을 하겠다고 승낙해 주어 고마워,라며 연신 마음을 표현한 후에서야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고 있니,라는 말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던 녀석의 반 구성원을 떠올려보니 그럴 법 했다. 대부분 순하고, 조용한 아이들이 많은 반. 그래서 큰 갈등이 드러나지 않을 반이었다. 참 다행이었다.


우리 한 번 잘해 보자며, 선생님이 곧 연락을 하겠다며, 휴대폰 번호를 하나 받아서 교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왠지 작년보다는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이 대책 없고(?) 우당탕탕 거리는 나를 믿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멘토링이니 이번엔 정말 교과수업에만 빠지지 않고 최대한 A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진행해 보려고 한다. 먼저 국어 문제집을 풀어야 한다면 지문이 길고 어려운 단어가 많은 것보다는 짧고 쉬운 글, 이해하기 쉬운 단어가 있는 것 위주로 함께 풀 것. 또,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있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으며 마음이 힘을 길러줄 것. 마지막으로 둘 다 좋아하는 그림을 공유하며 진로에 대한 계획까지도 함께 나누어 볼 것. 여기에 혹시 된다면 A의 모국어를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까지.


그래서 A가 한국어로 100% 소통이 되지 않아 힘들었던 경험을 줄이고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서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길려주고 싶다. 중학교 2학년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꿈꾸고 제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매일을 보낼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멘토링 사업을 한다고 해서 내게 특별히 주어주는 이득은 없다. 반대로 이 사업을 안 한다고 해서 딱히 손해를 보는 것도 없다. 교사이기 이전에 '공무원'이므로 그저 내게 주어진 일만 성실하게 해내며 하루하루를 보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공무원이면서도 '교사'여서,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라서 내가 조금만 품을 팔아 무언가를 하려고만 한다면 그 걸로 단 한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할 수 있기도 하다.


나는 이상하게도 신규시절부터 가르치는 것보다도 소위 말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 좋았다. 한 사람의 삶에 작지만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것이 미치도록 좋았다. 특히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단 한 명이라도 잡아준다면, 망설임 없이 응해준다면 평소에 골골대던 나도 힘이 샘솟아 엄청난 추진력으로 일을 벌이고, 해내곤 했다. 힘은 들어도, 그래서 매일 같이 집에서 밤 12시까지 일을 했어야 해도, 행복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를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서로 교감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이

내가 만난 아이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밝은 기운을 얹어주는 것이

정말 미치도록, 좋았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하는 이번 멘토링이 무척 기대가 된다. 어쩌면  국적도, 살아온 배경도, 나이도 다른, 유일하게 성별만이 같은 A와 내가 1년 간 멘토링을 하며 서로의 삶에 어떤 색의 이야기를 덧대어 줄지 궁금하다.


아마도 이건 아주 흔하디 흔한 멘토링은 분명,

아닐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14 금: 윤동주를 만나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