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일을 하다가 정말 부당한 일을 겪지 않는 이상 ‘그럴 수도 있겠지.‘, ’ 괜찮아. 내가 하면 되지.’하며 넘어가는 편.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여서 가능하면 맞추고 원하는 대로 해주고, 가족들에게도 굳이 힘든 이야기는 잘 안 하던 편이었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 좋게 좋게 넘어 가자, 사람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지난주 일요일 발가락이 골절되고부터는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분명 평소와 똑같은 하루인데도 출, 퇴근 길이 너무 버거웠다. 직업 특성상 하루 최소 3시간 이상을 꼬박 서 있어야 하는데, 온종일 수업하고 집에 돌아와 반깁스를 풀면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선생님 괜찮으세요?”라며 걱정해 주었고, 많은 선생님들께서 “병가를 내시지 왜 오셨어요.”라고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주셨는데도 마음 한편은 계속 우울했다.
등원하는 아침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엄마인 나는 왼발, 아이는 오른발에 반깁스를 한 채 유모차를 끄는 모습이라니. 평소 걸음의 1/10도 안 되는 속도로 느릿느릿 걷다 보니 답답하고 짜증 나고. 할 일은 많은데 몸은 안 따라주고.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병원비는 또 어떻고. 정형외과 진료비는 비급여는 왜 이렇게 많고 또 비싼지. 한 번 가면 최소 30,000원씩 나오는 통에 우울감이 더 배가 됐다. 만약 다치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안 들었을 돈을 지금 버리고 있구나... 싶었다. (다행히 나와 딸은 실비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뭐라도 해야 하는 것도 우울했다. 나는 요리도 싫고, (그냥 라면에 김밥 한 줄 먹으면 그만이고), 티브이도 싫고(그냥 웹툰 보다가 자면 그만이고), 다 귀찮아지는 그 상태. 놀아달라는 아이에게 짜증 섞인 말을 건네게 되는 그 상황이 너무 싫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마음은 가라앉았다. 남편이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쉽지 않았다. 한 번은 밥을 먹으면서 말한 적이 있다.
“오빠. 나 진짜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거 처음이야. 어쩌지?”
그때 남편은 내게 말했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온 것 같다고. 젊었을 때라면 그 정도로 다치지 않았을 것을 다친 것 보면 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 점점 아파지는 곳이 많을 거라고. 그런 날이 찾아왔을 때 마음이 쉬이 무너지지 않게 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많은 위안이 되었다. 매일매일 우울했지만 그 감정도 잘 들여다보고 해소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오늘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많은 사람들은 “힘내야지. “, ”할 수 있어. “, ”넌 해낼 거야. “라는 말을 응원의 메시지로 건네곤 한다. 나 역시 내가 만난 수많은 아이들에게 ”넌 할 수 있어. “ ”조금 더 힘을 내. “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긍정의 힘, 용기, 밝은 에너지는 그저 말 한마디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몸, 안정적인 경제력, 그리고 평안한 주변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파보니 알겠다. 특히나 몸이 아프면 우울해진다는 것을.
조금씩 회복하면서 마음의 온도도 올라가고, 어두움도 걷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 건강‘이라는 아빠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퐁당퐁당 연휴가 있는 이번 주는 한결 낫다.
시험 진도 중 어려운 ‘품사’는 다 가르쳤고, 이제 한결 쉬운 비문학 작품을 읽고 중요한 내용을 짚어주면 그만이다. 시험 직전에 총정리 평가 한 번 볼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게다가 좋아하는 가을이다.
비록 아직 나는, 발가락에 작은 부목을 덧대어 두 치수나 큰 크록스를 신고 어그적 어그적 걸어야지만 지난주보다는 낫다.
조금씩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괜찮아, 까짓 거. 점점 좋아질 거야. 하고.
추신: 모두 건강 챙기세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