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Nov 16. 2024

조용한 차분한 성실한, 그리고 글을 쓰는

흔히 목소리가 크고, 행동이 도드라져야만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있는 학급에선 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더 큰 목소리, 더 과감한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다.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도 차분하게 제 자신을 드러내는 아이가 있다. 목소리가 크지 않지만 제 생각을 표현할 줄 알고,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주변을 살뜰하게 챙길 줄 알며, 마음속에 담긴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같이 조금씩 노력하는, 아이.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제 영역을 넓히는 아이.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서윤이다.




중학교 1학년 교실은 그야말로 전쟁터이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열넷의 아이들에게 중1은 새롭고 신비로우면서도 두려운 공간. 빠른 시간 안에 제 입지를 다지지 않으면 소외될 수 있다는 생각에 3월 초에는 서로를 탐색하기에 바쁘다. 여학생들은 재빨리 자신과 잘 맞을 것 같은 친구를 찾아 무리를 지으려고 하고 남학생들은 힘의 크기를 가늠하며 알게 모르게 서열을 정리하려고 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외향적인 아이들이 주목받을 수밖에.


그런 상황에서 서윤이는 유난히 돋보이는 아이였다. 목소리가 커서? 밝고 쾌활해서? 애석하게도 둘 다 아니었다. 그저 유난히 조용했고, 차분했고, 성실했기 때문이었다. 유행하는 노래를 잘 부르거나, 끼가 많아 학급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기 때문이 아니라 늘 제자리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하는 것, 그뿐이었다. 또래 친구들에게 1학기에 한 번, 2학기에 한 번. 무려 두 번이나 반장으로 인정받은 것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서윤이를 믿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 뿐 아니었다. 선생님들도 알게 모르게 서윤이에게 의지했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국어’라는 과목을, 예를 들면 글쓰기나 책 읽기 등을 해야 하는 날이면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괜스레 겁이 나곤 했다. 다년간 겪어온 부정적인 반응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싫어요.”

“이런 거 왜 해요?”

“아…. 완전 노잼.”


과 같은 말이 떠올라 덜컥 겁이 날 때면 서윤이를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러면 서윤이의 적극적인 태도, 따뜻한 눈빛, 그리고 긍정적인 반응에 힘을 입어 그날 수업을 잘 마무리하곤 했다. (물론 이건 서윤이에게 한 번도 말한 적 없다.)


가끔 출근길에 만난 적이 있다. 서윤이인가? 싶어 다가가 말을 걸면 녀석은 날 알아보고는 영락없이 공손한 태도로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를 해 주었다. 그러면 난 괜히 인사를 받고 싶어 말을 건 것 같기도 하고, 아침에 만난 게 반갑기도 해서 꼭 


“안녕~ 서윤아. 날이 춥네.”

“서윤아! 이따 보자.”


라며 꼭 인사를 해 주었다. 그렇게 마주친 게 벌써 6개월이 넘어간다. 서윤이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가끔, 출근길에 서윤이를 마주칠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성실한 서윤이의 장점이 돋보인 적이 있다. 지난 5월, 스승의 날 이벤트를 기획했다. 첫 학년부장으로서 담임 선생님들께 소소한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반장과 부반장을 불러 모아 스승의 날 맞이 포스트잇 편지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니 아이들 모두 좋다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직 1학년이라 손이 많이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서윤이가 소속된 1반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마감 기한만 정해주었을 뿐인데 알아서 아이들에게 포스트잇을 돌리고 편지를 쓰도록 안내해 주고, 예쁘게 정리해 종이에 붙여 왔다. 신경 쓸 필요가 없게 책임감 있게 일을 마무리해 주는 모습이 참, 기특했던 기억이 있다. 




지난 6월 <인생박물관>의 김동식 작가를 초청하여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강연 후 소감문을 받았는데 그중 한 명의 글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소설가를 직접 만나서 강연을 듣고 나니 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것 같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왠지 서윤이 같아 슬쩍 물어보니 맞단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에 내적인 친밀감이 높아졌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역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스물다섯까지 이루고 싶던 꿈이 바로 ‘작가’였기 때문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이제는 잊혀 빛바래버린 그 옛날의 내가 떠올라 버렸다.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 편의 드라마 때문이었다. <순수>라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방송작가로 나오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내가 쓴 글이 방송이 되어 전국에 퍼져 나간다는 것은 덤으로 따라왔다. 그때부터 공공연하게 “나는 작가가 될 거야.”라며 말하고 다녔다. 공부보다 책 읽기가 좋았고, 책 읽기보다 글쓰기가 좋았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해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행복한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넌 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남들 다 하는 ‘선생님’, ‘회사원’, ‘공무원’이 아니라 ‘작가’라고 대답할 때의 그 특별함이 좋았다. ‘작가’라고 말하면 아주 짧은 감탄과 함께, 그럼 무슨 작가? 라며 돌아오는 질문은 더 좋았다. 그러면 열넷의, 열다섯의 나는 


- 저는요, 방송국에서 일하는 방송작가가 되고 싶어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건데요. 대본도 쓰고요….


하며,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그렇게도 잘 쏟아냈다. 넌 글을 잘 쓰니까 잘 될 거야, 라며 덕담을 건네고 돌아가는 상대의 뒷모습을 보면서 늘 되뇌곤 했다. 맞아, 난 작가가 될 거야. 나는 글을 쓸 거야,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야.


너무나 간절해 몇 번이고 혼자서 글을 썼다. 최초의 습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초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남자 셋 여자 셋> 시트콤의 대본을 혼자 써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어설프지만 그만큼 절실했다. 꼭, 작가가 되고 싶었으니까. 김작가라고 불리고 싶었으니까.


고심 끝에 전공을 국어 국문학으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방송국에 들어가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글을 쓰고…. 그러기 위해선 국어 국문학이 적절하다고 믿었다. (물론 실제로 배우면서 엄청난 괴리를 느꼈지만) 대학 시절 학생리포터 활동을 한 것도, 굳이 한 학기를 휴학해 가며 여의도에 있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을 다닌 것도 모두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나의 10대, 그리고 20대의 절반은 ‘작가’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긴 여정이었다.


너무 간절해서 오히려 독이 되었을까. 아니면 나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한 채 섣부르게 결정한 목표가 발목을 잡은 것일까. 가지 않은 길은 어쩌면 더 깊이 새겨지는 것일까. 결국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선생님이 된 지 13년이 넘어서도 난, 아직도 작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 그 글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말이 아니라 글로 쏟아내고 싶은 마음. 서점에 내 이름 석자가 들어간 책을 바라보는 상상을 하는 마음.


내게는 아무도 없었지만 서윤이에겐 내가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엔 내 꿈에 관심을 갖는 선생님보다는 내 전교 석차에 관심을 갖는 선생님이 더 많았지만, 그래서 사실 작가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서윤이에겐 너무나 간절히 작가가 되고 싶었던, 지금도 되고 싶은 내가 있었다.


그래서 서윤이에겐 녀석의 꿈을 위한 다양한 길을 제안해 주고 싶었다. 조만간 학교에서 실시하는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녀석을 1번으로 추천한 것도 그 이유였다. 특히 이번엔 도서관에서, 그것도 소규모로 진행하는 행사이다 보니 더 진솔한 나눔이 가능할 것이었다. 서윤이에겐 그런 멘토와의 만남도 소중할 것 같아 제안하니 흔쾌히 OK.


이번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한 아이도 바로 서윤이. 늦은 시간임을 무릅쓰고 연락해 서둘러 제안했다. 


- 부담을 주는 건 아닌데 정말 좋은 기회고…….

- 선생님도 같이 글을 쓸 건데 1학년 중에 글쓰기 좋아하는 아이들 모아서 글을 쓸 거고…….

- 무엇보다 우리는 이번에 책을 출판할 건데 이렇게 이렇게 저렇게 저렇게 할 거고…….


한참을 뜸 들이던 녀석은 좋다며 답을 해 왔다. 글을 좋아하는 선생님과 글을 좋아하는 제자의 만남이라니. 벌써 책을 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서윤인 나를 찾아 언제 글쓰기가 시작되느냐고 물었다. 딴엔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었다. 어쩌면 서윤이는 혼자서 쓰던 글을 정리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좋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서윤이, 다경이, 이현이,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모여 글을 쓴 지 벌써 2주가 지나간다. 바쁜 일정에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카톡으로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 아이들이 글을 써주면 나는 그것을 받아 워드로 옮기고 편집하고, 수정한 후 다시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내 글을 적고 있다. 지금 이 글도 우리의 책 한 꼭지에 들어갈 예정이다.


힘이 드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련다. 육체적으론 힘들지언정 마음이 너무나 행복하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수업 준비를 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글 쓰고 편집하고 책으로 엮어내는 이 과정이 훨씬 행복하다. (훨씬 보다 더 좋은 부사는 없을까? 표현이 어렵다.) 나 역시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내가 쓰고 싶은 에세이를 끝내 완성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이다. 



문득 서윤이가 보냈던 메시지 한 통이 기억난다.


- 선생님. 이런 기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오히려 내가 돌려줄 말이다.


- 서윤아. 다경아. 그리고 이현아. 이런 기회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워. 





사진: UnsplashThought Catalog

이전 11화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