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머금은 빗방울을 쏟아내야 지나가
화창하고 바싹 마른 햇살이 내리쬐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를 가장 좋아하는 나에게 장마는 꽤 힘든 시간이었다. 높은 습도로 거실 바닥도 끈적하고 눅눅한 이불, 개운치 않은 공기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햇볕을 거의 쬐지 못하는 동안 찾아오는 우울한 기분이다. 얼른 쨍하고 파란 하늘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장마는 그리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먹구름이 머금은 빗방울을 모두 쏟아내고 나서야 장마는 물러났다.
올해도 급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가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폭우를 뚫고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어머니, 제가 얼마 전 아이에게 선생님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힘들고 싫다고 이야기하니 아이가 저한테 놀라운 이야기를 했어요. ‘선생님, 비가 그치면 무지개를 볼 수 있잖아요, 저는 그래서 비 오는 날도 좋아요!’라고 하더라고요. 아이의 그 얘기가 며칠 동안 내내 마음에 맴돌았어요.”
살아가면서 먹구름이 햇살을 가리고, 하늘을 온통 뒤덮을 때가 있다. 빨리 그 먹구름이 지나가 버렸으면 싶지만 지나가지 않는다. 머금은 빗방울을 모두 쏟아내고 나서야 깨끗이 물러난다. 답답하고, 흐릿하고, 개운치 않고, 쉽게 끝나지 않는 장마와 같은 긴 시간이다. 하지만 장마가 그친 후에 볼 수 있는 찬란한 선물 같은 무지개를 기대한다면 더딘 장마의 시간 동안 조금은 덜 지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언제 이 장마가 끝날까 했는데 어느새 하늘은 조금은 더 높아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이 더해진 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했다. 거리의 나무들은 조금씩 노란빛을 띠기 시작하고 하나둘 낙엽들이 쌓인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계절인 가을이 찾아왔다. 이 계절도 어느덧 지나고, 겨울이 오고, 봄이 오고, 또 장마와 함께 뜨거운 여름은 반드시 다가올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진 지금의 무지개 선물 같은 가을의 햇살과 다가올 겨울의 눈부심과 봄의 따스함을 한껏 기대하며 누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