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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한 생이 멈췄다

비엔나에서 홀로 두렵고 힘들었을 나를 치유하기 위한 살풀이

by ANNA

'She die?'

문법이고 뭐고 간에 내가 절박하게 필요했던 것은 바삐 움직이는 오스트리아 응급구조대원들이 'die'란 말을 알아듣는 것이고 Yes, No 둘 중 하나의 답변을 듣는 것이었다.


'Yes'

사람의 생과 사를 결정짓는 대답이 이렇게 간단 했던가?

영혼은 일도 없는 사무적인 이 한마디에 난 버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바삐 사라지는 응급구조대원의 뒷모습은 고장 난 티비화면처럼 지지직 거리며 사라지면서 모든 영상이 정지되었다.


이런 나를 깨운건 내 어깨를 잡고 흔드는 고인의 친구였다.

'죽은 거예요? 죽었어요?'

'네'

응급구조대원의 어투와 다를 바 없는 나의 한마디에 내 어깨를 흔들었던 고인의 친구도, 버스 밖에서 목을 빼며 친구가 쓰러지는 광경을 지켜보던 나머지 친구들도 길바닥에 쓰러져 오열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는 실체를 난생 처음 겪어봤지만, 여행 인솔자로서 어떻게든 일을 처리 해야 하기에 정신줄 부여 잡고 달달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가며 일단 전날 함께 했던 가이드를 찾았다.


한걸음에 달려와준 가이드와 쏙쏙 도착하는 경찰, 법의학자 그리고 대사관 직원까지

'사망'이라는 큰 사건 앞에서는 '여기가 유럽 맞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처리되었다.


아침에 샤워도 하고 말도 했다는 이방인이 갑자기 사망한 경황을 파악하고자 묻는 질문들에 난 영혼 없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반복해야만 했다.


비엔나 스웨덴플라츠 한가운데 시신 보관용 경찰 텐트가 쳐지고 바닥을 뒹굴며 오열하는 동양인들, 경찰과 법의학자들에게 둘러 쌓여 취조 당하는 동양인

버스에 기대서서 시종일관 망연자실한 눈으로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버스기사

누가 봐도 단체여행 버스에서 사망한 동양인 관광객을 처리하기 위한 과정이다.




비엔나 중심가에서의 자유시간 후 그날 손님들과 함께 귀국해서 마무리하는 투어 일정이었지만 난 나머지 손님들과 함께 귀국하지 못했다.


손님들을 보내고 주인 없는 고인의 짐과 함께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한동안 멍하니 큰대자로 누워 있었다.

문득 귀국해서 마시려고 구입한 와인이 생각나 한 모금씩 마시기 시작하자 여행의 기대에 부풀어 있던 인천공항에서의 첫 미팅부터 증상이 안좋아졌던 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로 향하며 사망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정녕 살릴 수 있는 기회는 없었을까?'

'강압적으로라도 병원에 끌고 갔어야 했었나?'

회한과 자책, 그리고 프라하에서 비빔밥 먹었다며 좋아하던 모습등이 오버랩되면서 눈물이 뚝뚝 흐르더니 금간 둑이 터지듯 주체할 수 없는 오열이 시작되었다.


그날의 비극은 2년이라는 세월을 건너왔다.

병아리 인솔자에게 닥친 기억과 눈물은 시간의 흐름에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얼룩처럼 남아 흑백영상으로 재생되며 나를 괴롭힌다.


불과 이틀전 감기 증상을 호소하던 60대 초반의 손님이 갑자기 사망하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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