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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ANNA

재미 삼아하던 MBTI 검사는 처음에는 INFJ에서 오락가락하더니, 어느 순간 확고한 ENFJ로 자리 잡았다.

직업이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기보다는, 굳이 검사를 하지 않아도 외향적으로 변했다는 점은 나 스스로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였다.


사람 앞에만 서면 주눅 들고 겁을 내던 INFJ 병아리 인솔자는, 수많은 손님을 마주하고 각양각색의 사건을 겪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이제는 어떤 유형의 손님이라도 맞설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새침했던 아가씨는 능글맞은 아줌마로 변신해 있었다.

인솔자의 길은 결국 내 안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해 낸 (혹독한) 훈련장이었다.


단순히 ‘여행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시작한 일이었다.

서비스직이 무엇인지, 인솔자의 역할이 얼마나 복잡한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돈 벌며 여행한다는 치기 어린 호기심 하나로 낯선 길로 나섰다.

컴퓨터 화면이 세상의 전부였던 공돌이는 그렇게 무모하게 세상 속으로 향했지만, 막상 발을 들여놓고 보니 여행 인솔자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다채롭고, 때로는 가혹했다.

서비스업이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만 연마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숨은 마음을 읽는 법까지 배워야 했다.


공항에서부터 시작되는 수많은 변수, 예상치 않게 터져 나오는 돌발 상황들, 수만 가지 인간군상들과의 만남..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좌절과 눈물로, 또 때로는 싸움과 화해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나는 수백만 가지 얼굴과 마주했고, 그만큼의 이야기를 품게 되었다.


카카오톡 친구가 늘어날수록 그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손님들은 내 삶의 교과서가 되었고, 동시에 여행 자체가 곧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현재 카카오톡 친구는 2천여 명을 넘기고 있다.

2천 명 개개인은 지문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를 가지고 내가 이끄는 투어에 참가해 2천 가지의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같은 일정의 투어라도 제각각의 색깔을 지니며 종료하듯 그 안에서의 이야기는 더욱더 다채롭게 펼쳐진다.

「백만 가지 여행, 오백만 가지 스토리」는 그 다사다난했던 여정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이야기까지..

때로는 해프닝, 때로는 감동, 때로는 봉합되지 않은 상처로 마무리되기도 했다.


여행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져 가슴에 새겨진 장면들을,


나는 이제 기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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