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하늘 아래 직립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Gary Karr | En Aranjuez con tu Amor

by 로제



열린 귀는 들으리라. 한때 무성하던 것이 져 버린 이 가을의 텅 빈 들녘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소리 없는 소리를, 자기 시간의 꽃들을.

-법정, '서 있는 사람들'



하잘것없는 이름 석 자 아무개.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느라 그다지도 극성을 떨지만, 그 건너 있는 8만도 넘는 대장경판 어느 모서리를 보아도 그러한 흔적은 없다.

-128p


인간 내부에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허욕과 오만에 도취되어 있다. 이와 같이 오늘의 인간은 장님이 되어 가고 있다.

-174~175p



조금씩 달이 차오르는 요즘, 나의 마음은 얼마나 차올랐다고 할 수 있는가.


간만에 펴든 [서 있는 사람들]을 읽으며 잠잠히 내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을의 바람이 마땅히 가야 할 때가 된 것들을 쓸어 없애듯이

문장들이 나의 마음에 쌓인 온갖 것들을 쓸어 내면서 본래의 공간을 드러나게 했다.


무엇을 채우고자 그리도 애써 왔던가.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마음은 한량 없이 넉넉할 뿐인 것을.


왜 한 해 동안

생각만큼 얻지 못했다고 하여,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여, 보일 것이 없다고 하여

스스로를 책망하는가.

나의 분별심은 그다지도 믿을 만한 것이었던가?


무공덕無功德!



전제군주 앞에서도 당당했던 달마의 외침이 가슴에 맴돈다.

달마의 직립한 자세를 보고 마땅히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어지러운 소리를 꺼뜨리고 침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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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y Karr | En Aranjuez con tu 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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