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i Mitchell | Blue
만약 시 한 편이 집중하여 꽉 쥔 주먹이라면, 소설 한 편은 느긋하게 탁 트인, 활짝 편 손이다. 거기엔 도로도 있고 둘러가는 길도 있고 목적지도 있다. 주먹이 배제하고 망연하게 만드는 곳에서 펼친 손은, 그 여정에서 많은 것을 만지고 아우를 수 있다.
-실비아 플라스, '낭비 없는 밤들'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이미지.
혹은 활자를 뚫고 나오는 이미지.
빛이 날선 칼끝에 쏟아지며 그 주위로 덩어리를 이룬다.
덩어리진 빛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칼날,
내가 지각하고 있는 것은 빛이 펼쳐내는 부드러운 몽롱함일까 아니면 찌를 듯 명료한 칼의 형상일까.
눈부심 속에 혼미해진다.
_커다랗고 빨간 그녀의 얼굴이 금 간 수박처럼 주름졌다 (261p),
_효수한 인간의 머리처럼 팻말을 짊어진 (299p),
_죽어버린 뇌가 살아있는 두개골의 어두운 동굴 속에서 마비된 회색빛 박쥐처럼 꼬깃해지는 느낌 (3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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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의 수사를 맞닥뜨리면
그 기이함에, 유리 조각 같은 명백함에, 언뜻 보이는 광기에
멈칫, 움찔, 낯선 야생화가 풍기는 향에 도취되듯
두려움과 매혹 사이에 잠시 방황하다 결국 매혹에 나를 맡기게 된다.
그의 글은 내게 꽉 쥔 주먹이기도, 활짝 편 손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함축하기도 하며, 모든 것을 천천히 풀어내 보이기도 했다.
마치 모든 여정을 다 알고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듯이 느껴졌다.
그가 너무도 빨리, 그토록 극단적으로 자신의 종착지를 결정했다는 게 매우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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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i Mitchell | Bl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