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백록담까지 올라갈거다. 엄마가 주먹밥 싸고 남은 재료들을 내게 주고 갔다. 남은 쌀로 밥을 하고, 참치와 마요네즈, 참기름, 소금을 넣고 만들었는데 엄마가 해준 주먹밥 맛이 나지 않았다. 분명 재료는 같은데 왜 그 맛이 나지 않을까. 엄마가 해준 주먹밥이 훨씬 맛있었다. 주먹밥을 미리 만들어놓고 잠이 들었다. 새벽 5시반에 일어나 한라산 등산 시작점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올라가던 중에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해가 뜨고 있었다. 어두웠던 길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 속도면 백록담까지 금방 도착할 수 있을것 같았다. 절반가량 올라갔을때 바닥이 미끄럽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아래쪽 길은 눈이 녹았는데 위는 눈이 녹지 않고 얼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 둘 아이젠을 착용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아이젠을 집에 놓고 왔기 때문에 아이젠을 착용할 수 없었다. 영실코스는 눈이 얼지 않아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도 등산을 할 수 있었는데 성판악코스는 눈이 얼어버린 것이다. 절반이나 왔는데 돌아가기 아까워 어떻게든 올라가보려고 애를 썼지만 꽁꽁언 바닥에 휘청휘청거리며 넘어질뻔 했다. 아쉽지만 다시 입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한라산 정상까지 올라갈거라는 의지가 강했는데 아이젠 하나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아이젠을 챙길까 말까 하다가 제주도 날씨가 더우니까 눈이 녹았겠지라고 짐작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꼼꼼히 준비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아이젠을 꼭 챙겨야겠다. 내려오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미끄러질뻔한 위기를 몇번을 넘겨야만 했다. 무리해서 더 안올라가고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입구로 내려와서 어디를 갈까 하다가 한라산만큼은 아니어도 오름의 왕좌라고 불리는 '큰노꼬메오름'을 가보기로 했다. 234m의 오름답게 경사가 높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올랐을까 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본 풍경은 이루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서부권에 있는 작은 오름들이 내려다보였다. 한쪽에는 한라산이 보였다. 힘들게 올라야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신께서 백록담까지 오르지 못해 실망한 내게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깜짝선물을 받았을때의 기분이었다. 오름정상에서 자연이 주는 기쁨을 온전히 느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이렇게 멋진 뷰를 마주하니 감동이 몇배는 더 크게 밀려왔다. 백록담을 못가 아쉬웠던 마음이 사라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주에 있는 내내 비 한번 내리지 않고 날이 맑았다. 햇살을 좋아하는 내게는 여행지에서 이만한 선물이 없다.
이 멋진 뷰를 볼 수 있었던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야. 내가 기대했던 대로 되지 않는다해도 괜찮아. 얻는게 있으면 포기하는 것도 있고, 포기하는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어. 때로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기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