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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Sep 25. 2024

숙제해야 돼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소년, 아마드

숙제가 내 인생 최대의 고민거리였던 날들

★★★★☆




소년들에게 세상은 배워야 할 것투성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그렇게 공부하라 꾸짖고 숙제하라 꾸짖나 보다. 정작 어른들에게 역시 세상은 배워야 할 것 투성이면서.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숙제장을 사촌 집에 두고 온 네마자데(아마드 아마드 푸)가 연습장에 숙제를 해와서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선생님은 매정하게 네마자데의 연습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는 다음부터는 절대 봐주지 않겠다며 호통을 친다. 그러자 네마자데는 제 마음이 찢겨나간 듯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이들은 원래 잘 운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 말을 듣다 보니 아이들이 우는 건 그다지 슬퍼 보이지 않았다. 배고프다며 울고 졸리다며 울고 사달라며 울고 안아달라며 우니까. 아이들의 눈물은 어딘가 슬픔보다 화를 분출하는 수도꼭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겹겹이 쌓인 주름을 타고 흐르는 노인들의 눈물이야말로 진정한 슬픔이라 생각해 왔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된 네마자데는 내가 또래였을 때보다 더 큰 슬픔을 안고서 엉엉 울고 있더라. 자그마한 손등으로는 모두 닦아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눈물을 콸콸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숙제를 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벌을 받던 나날들이 내 어린 시절 가장 무서웠던 기억이면서도 그걸 까맣게 잊고 지냈다. 어쩌면 아이들은 화가 나서기보다 겁이 나서 우는 경우가 더 많았을 텐데 내가 그걸 몰라줬구나. 네마자데는 겁이 났을 거다. 불호령을 내리는 선생님과 마주했으니 겁이 나서 그렇게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 거다. 소년의 '겁'이라는 눈물의 다른 경로를 찾아낸 지금, 네마자데를 애처롭게 지켜보던 짝꿍 아마드(바하크 아마드 푸)의 표정이 어느새 내 얼굴에도 묽게 번져 있었다. 선생님 때문에 얼마나 겁이 났을까. 그리고 갈기갈기 찢겨버린 연습장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아마드는 책가방에서 숙제장을 꺼내보고 화들짝 놀란다.

"엄마. 제가 실수로 네마자데의 숙제장을 가져왔어요."

하굣길에 네마자데와 놀다 넘어졌을 때 숙제장이 뒤섞여버린 것이다. 아마드에게 그건 정말이지 엄청나게 큰일이다. 놀란 와중에도 아마드는 엄마의 집안일을 도우며 네마자데의 숙제장을 돌려줘야 한다 말해보지만 엄마는 시끄럽다며 어서 들어가 숙제나 하라고 꾸짖는다.


아마드는 정말 심각한데 정작 엄마는 아마드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이 상황을 그저 덜 자란 소년의 몸집만큼이나 조그마한 소동으로 여길 뿐이다. 소년에게 숙제는 어른의 생업만큼이나 커다랗고 중요한 일인데도 말이다. 이렇게나 어른들은 제멋대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제멋대로 군다고 하지만 진짜 제멋대로인 건 오히려 어른들이다. 숙제하라 할 때는 언제고 엄마는 아마드에게 심부름까지 시켜댄다. 똑똑한 아마드는 엄마의 심부름을 틈타 네마자데에게 숙제장을 전해주러 가는 작전을 세우고 꼬불꼬불 언덕길을 넘어 옆동네 포쉬테로 향한다. 내 친구의 집이 정확히 어딘지도 잘 모르면서 아마드는 힘차게 달리고 달린다. 포쉬테에 도착한 아마드는 어른들에게 물어물어 네마자데의 집을 찾아보지만 헛수고다. 정말이지 어른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어른들은 길을 묻는 아마드에게 이것 좀 해달라, 저것 좀 해달라 심부름시키기 바쁘다. 심지어 우연히 마주친 아마드의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담배를 사 오라 시키면서 볼멘소리를 해댄다.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 녀석이 말을 안 들어."

저기요 어르신. 도대체 누가 누구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시는 건가요. 아마드가 그렇게 사정하며 친구의 집을 물어도 답해주지 않은 건 할아버지 아니신가요. 불쌍한 아마드. 그것도 모자라 옆동네 아저씨는 아마드가 소중하게 쥐고 있던 네마자데의 숙제장을 아무렇지 않게 한 장 찢어 빼어가기까지 한다. 아마드가 이건 네마자데의 것이라 안 된다 해보지만 아저씨는 막무가내다. 어른들은 아마드의 말은 듣지도 않고 제말만 들으라며 우겨대니 아마드는 친구의 집을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다. 끝내 아마드는 네마자데에게 숙제장을 전해주지 못한 채 집으로 향한다. 속상한 마음을 등에 지고서 꼬불꼬불 언덕길을 터덜터덜 내려간다.




학교 숙제가 인생 최대의 걱정거리였던 어린 시절을 어른들은 다 잊은 걸까. 하긴. 어른이 되고 나면 먹고살 걱정에 뒤돌아 볼 새도 없이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버티기도 바쁠 테다. 어쩌면 그 걱정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크기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고 결국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매일매일 주어진 숙제를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앞가림하기도 바쁜 세상살고 있다. 아니. 어쩌면 앞가림이나 잘하라 꾸짖는 어른이 수밖에 없는 세상살고 있는 것이겠다. 숙제를 못한 친구에게 숙제를 빌려주고, 숙제를 해온 친구의 숙제를 베끼던 다정다감한 장면들은 이제 소년들에게서도 어른들에게서도 보기 드문 영화 같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집으로 돌아간 아마드는 캄캄한 방에 불을 켠다. 그리고 방에 앉아 밤늦게까지 열심히 숙제를 푼다. 다음날 지각한 아마드는 숙제 검사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마음 졸이는 친구 네마자데 옆에 앉아 숙제장을 건넨다. 그리고는 속삭인다.

"숙제 검사 아직이지? 내가 네 것까지 해왔어."


소년들에게 세상은 배워야 할 것투성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그렇게 공부하라 꾸짖고 숙제하라 꾸짖나 보다. 정작 어른들에게 역시 세상은 배워야 할 것 투성이면서. 그러니 나는 꾸짖는 어른이 아니라, 친구의 숙제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소년에 머물고 싶다. 나에게도 세상은 배워야 할 것투성이고 내 친구에게도 세상은 배워야 할 것 투성이일 테니. 영화 끝에 네마자드의 숙제를 검사한 선생님이 말한다.

"잘했다."


네마자데의 숙제장에 아마드는 꽃 한 송이를 책갈피처럼 끼워두었다. 나도 친구에게 그런 친구가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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