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레이첼 Oct 14. 2024

1억 6천이 보여준 냉정한 현실

이 돈으로 내가 갈 수 있는 집은?

# 언제 또 퍼질지 모를 곰팡이를 피해


2018년 1월, 겨울이었다.


아무리 환기와 청소를 한대도 한번 생긴 곰팡이가 삽시간에 퍼지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는 그 집에서 더 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른인 나와 신랑은 둘째 치고서라도 2살, 4살밖에 안된 아이들 호흡기 건강이 가장  걱정됐다. 그리고 지금 없앤다고 해서 다음 겨울에 또 안 생길 거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선 곰팡이를 피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집주인에게는 긴말하지 않고 이사 가겠다고 통보했다. 이사비를 달라, 복비를 반반하자 그런 말조차도 더 이상 주고받기 싫었다. 속 편히 그냥 복비도 내가 부담한다 생각하고 빨리 이 집에서 나가기 위해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사실 집주인 입장에선 수익이 되는 좋은 일이다. 계약기간 2년도 안 돼 세입자가 스스로 나간다면서 다음 세입자도 알아서 구하겠다고 하고. 새로운 세입자에게 전세비용을 더 올려 받을 수 있는 데다가 나가는 세입자에게 따로 지불할 금액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음 세입자는 내 보증금보다 2천만 원을 더 올려 계약했다. 우리가 이사 가던 날 도배업자가 와서 벽지를 뜯어내고 다시 도배를 한다고 했다.)


어쨌든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이 집을 정리하고 싶었다. 우리 집을 내놓으면서 근처에 이사 갈만한 전셋집이 있는지 문의를 해봤다. 첫째가 유치원에 이제 막 적응해서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멀리 이사 가기가 쉽지 않았다. 되도록 유치원 통학이 가능한 근처로 집을 알아보고 싶었다.



# 충격과 눈물의 현실 전셋집 투어


내가 입주하고 나서 1년도 안 됐지만 그사이 전세 시세는 올라있었다. 기존 빌라와 비슷한 수준의 컨디션과 보증금 가격대를 가진 매물은 찾기 힘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당시에도 전세가 귀했었나 보다. 우선 급한 건 내 상황이라 이사 갈 날짜를 맞출 수 있는 매물들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현실은 냉정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차가운 현실이 더 피부에 와닿았다. 1층이라고는 하지만 계단 몇 개가 내려간 반지하집. 거실 창문으로 마을버스 바퀴가 지나가며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게 보였다.


또 다른 집은 상가건물 같은 빌라의 2층이었는데 거실에 붙어있는 화장실이 희한하게 계단으로 5~6칸쯤 올라가서 껑충 높이 지어져 있었다. 채광이나 뷰는 고사하고 거실을 걸어 다니자 바닥조차 삐그덕 거렸다. 그 집을 보여준 부동산 사장님은 집 안에 화장실도 높이 있고 참 좋은 집이라며 멋쩍게 웃으셨다.


전셋집들을 보고 부동산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자 부동산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건네셨다. "새댁. 지금 형편이 여기저기 따질 때가 아녀. 우선 금액에 맞춰서 들어가고 다음에 돈 모아서 더 좋은 집으로 가면 되지." 딸 같은 나이대의 나를 위로해주시려고 해 주신 말이었지만 사실 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 1억 6천만 원이라는 돈의 가치


1억 6천만 원.

160,000,000원.


일반적인 사과 박스에 만 원권 지폐를 꽉 채우면 대략 1억 5천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작은 비타 500 박스에 권으로 채워 담으면 1억 정도가 된다.


단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고 실제로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금액들이다. 몇 십, 몇 백, 몇 천만 원도 아니라 억 단위가 넘는 1억 6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내겠다고 하는데도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지는 못할 망정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고 슬퍼서 눈물이 났다. 혼자 집으로 걸어가면서 이런 데서 애들을 어떻게 키우냐고 엉엉 울었다. 냉정했지만 그게 실제 내가 처한 리얼 현실이었다.


신랑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매일 수년간 열심히 일했고, 나도 생활비를 아낀다고 아득바득 월급의 상당 부분을 열심히 저축했다. 그렇게 돈을 모은다고 해도 부동산 집값과 전셋값이 오르는 시세를 따라잡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저축한 돈에 대출을 받아서 마련한 1억 6천이라는 돈을 지불하고 제공받는 주거환경이 너무 초라하고 조악했다. 이 비현실적인 돈의 가치를 그냥 받아들이고 빌라촌에서 악착같이 버텨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내가 놓친 게 있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현타가 온 상태에서 관점의 전환이 필요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안방의 곰팡이 벽을 보면서, 잠든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새벽같이 나갔다가 밤에 녹초가 되어서 돌아오는 신랑을 보면서.


그렇게 이사한 지 1년도 안된 시점에서 또다시 내 앞에는 2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비싸고 불편한 서울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쾌적한 서울 근교 경기도로 가야 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