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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민 Jul 21. 2021

수심 5m, 안전정지 3분 (3)

#브런치 #소설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 #자격증 #위로 #감동 #여행

대표와 팀장은 일주일간 은수가 했던 업무를 전부 출력하여 하나하나씩 단점을 찾아내었다. 아무리 완벽한 답변을 하더라도 소용없었다. 하고자 하는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자진 퇴사로 몰아가려는 회사의 계략을 은수는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퇴사를 생각하고 그 시기를 고려하고 은수였다. 당장이라도 출력물을 집어던지고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은수는 인사팀으로 재직하고 있는 친구의 조언을 가슴에 새겼다. 


“조심해. 지금, 너 쫓아내려고 수 쓰고 있는 게 보여. 퇴사할 생각이라면 절대 자진 퇴사는 하지 말고 권고사직으로 퇴직금, 연차수당, 위로금, 실업급여 챙길 거 다 챙기고 나와.”


은수는 납작 엎드렸다.


“회사를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4시간의 면담 끝에 결국 대표 입에서 ‘권고사직’이란 단어가 나왔다. 이때다 싶었던 은수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꼭 챙겨야 할 서류, 실업급여 지급 방법, 해고 위로금과 퇴직금 지급시기 등을 정리한 요구사항이 적힌 서류를 대표에게 내밀었다. 그 어떤 사소한 것도 누구에게 책잡히고 싶지 않던 대표는 은수의 당연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성격은 거지 같아도 일은 잘한다는 소리를 듣던 은수였다. 첫 직장 분위기가 좋아서 그랬던 걸까. 차라리 대놓고 욕하는 사람이 낫다고 생각했다. 서로 언성 높여가며 치열하게 싸웠고, 퇴근 후에는 밤새도록 함께 술을 마시며 풀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은수였지만, 뭐가 그리도 즐거웠는지 대부분의 술자리에 참석했었다. 밤새도록 이어진 술자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야 비로소 마무리되곤 하였다. 


나쁘지 않은 회사였지만, 다른 업종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커리어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커리어적인 성장을 꿈꿔왔기에 은수는 아쉽지만 당차게 첫 직장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두 번째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이직 후 회사는 말 그대로 재미가 없었다. 은수는 숨 막힐 듯 적막한 사무실과 적은 인원수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정치싸움에 지쳐갔고 팀장의 병적인 꼼꼼함에 질려갔다.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유일하게 은수에게만은 싫은 소리를 냈던 팀장이었기에 다른 누구에게 욕을 할 수도 없었다. 팀장은 은수를 제외하고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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