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민 Aug 02. 2021

수심 5m, 안전정지 3분 (4)

#브런치 #소설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 #자격증 #위로 #감동 #여행


팀장은 은수와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컴퓨터를 마주 보고 앉은자리에서 말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지시는 메신저를 고집했다. 맞은편에서 키보드를 치는 소리가 들리면 은수는 가슴이 두근거려 모니터 화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키보드 소리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창고정리 같은 허드렛일은 누구도 담당자로 지정되지 않은 업무였다. 그러나 재고정리가 완벽하게 되어있지 않거나 창고가 어질러져있을 때는 왜인지 항상 팀장이 움직였다. 팀장 혼자 창고 정리를 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은수와 몇몇 눈치를 보던 직원들이 정리에 합세했고, 결국 사무실 대청소가 되어버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오늘은 창고 정리, 내일은 탕비실 정리.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허드렛일로 보내버리면 저녁 6시, 다시 업무시간이 시작되었다. 


은수는 연차를 내고 정신과 상담을 예약했다. 그러나 연차는 반려되었다. 은수는 이유조차 묻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은수는 퇴근 후 혼자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 갑을 다 태울 때까지 울었다. 화장실로 달려가 미친 듯이 토한 은수는 그 어떤 말도 더는 회사에서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권고사직 면담을 했던 그날도 은수는 아무 일 없이 자리로 돌아와 묵묵히 남은 일을 끝마쳤다. 다만, 그날도 퇴근 후 옥상에 올라가 한 갑의 담배를 다 태웠을 뿐이었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괜찮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며 담배를 태웠을 뿐이었다. 


‘결국 권고사직이 결말이라면, 열심히 일하지 말걸. 스스로 혹사시키지 말걸. 불평불만도 해볼걸.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어줄 때까지 대들어볼걸. 미안해. 이렇게 되어서 미안해. 아파도 참아서 미안해. 힘듦을 외면해서 미안해. 미안해. 은수야.’


은수는 그렇게 한참 동안 옥상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퇴사 날 송별회 겸 회식이라니. 심지어 퇴사 사유는 권고사직이었다. 끝까지 착한 사람 이어야했던 대표와 팀장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이었다. 먹고 싶은 메뉴가 있냐는 말에 은수는 지난 회식에서 속이 좋지 않아 먹지 못했던 뷔페를 떠올렸다. 그러나 메뉴는 샤부샤부였다. 이럴 거면 도대체 왜 먹고 싶은 메뉴를 물어보았는지, 송별회는 왜 하자고 했는지 은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팀장은 은수의 의견을 대표에게 전달했을 테고, 대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른 메뉴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팀장은 마지막 날까지 은수의 편에 서주지 않았다. 은수 하나만 포기하면 모두가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그날 회식은 본인들의 마음을 편히 하기 위한 억지로 이기적인 송별회일 뿐이었다. 


점심 회식을 하고, 은수는 팀장과 따로 커피를 마셨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보다는 은수의 앞으로 거취가 더 궁금했던 팀장이었다. 은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퇴사하면 당분간 조금 쉬려고요.”


“은수씨도 이제 서른 아니에요? 쉬면 어떻게 해요.”


말이 가시를 가득 삼켰다고 느낀 것은 은수의 피해망상이었을까. 회사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은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고맙게도 은수는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마지막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대표와 팀장은 사무실 밖까지 나와 웃으며 배웅을 해주었고, 대표는 은수를 안아주었다.


“은수씨, 건강하세요.”


“네. 대표님도 건강하세요.”


은수는 애써 웃으며 바보 같은 답인사를 건넸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회사를 나온 그날도 은수는 습관처럼 헬스장에 가 미친 듯이 운동을 했다. 


종종 늦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기관사의 안내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지하철이 한강을 건너는 짧은 시간, 세상이 시끄러워 귀를 막아놨던 이어폰을 잠시 빼고 ‘힘든 일은 여기 놓고 내리세요.’,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같은 말로 짧은 위로를 받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 따뜻한 말조차 듣기 싫은 소음으로 느껴질 때 은수는 본인의 삶이 바스러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의지할 수 있는 곳도, 의지하고 싶은 곳도 없었고, 뭘 잘못한 건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친해지려야 친해지고 싶지 않고, 일은 늘어만 갔으며 전혀 수습되지 않았다. 은수는 하루하루를 눈물로 이어붙이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심 5m, 안전정지 3분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