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서울에서도 변두리인 능골이라는 곳에 살았다. 말 그대로 산소가 많았던 그 동네는 행정구역 상 영등포구였고, 구 안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부모님이 언제 능골에 이사 오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어색할 정도로 그 마을은 들에 논밭투성이었고, 나직한 구릉에는 과수원마저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 상수리나무를 올라타고 흔들며 놀곤 했는데, 아이들은 이 놀이를 '말타기'라고 불렀다. 우리는 적당히 흔들리는 조금 어린 나무를 찾아, 나무칼을 차고 소위 그 ‘말’을 타면서 우리는 저마다 만화영화에 나온 주인공이 됐다. 상수리나무숲은 봄에 재미있는 말이 되었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주었으며, 가을엔 털기만 해도 후드득 도토리를 떨어트리는 그야말로 만능 친구였다. 나는 다른 것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아도, 상수리나무에 올라타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던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높은 나무에 올라, 밥 짓는 냄새로 집집마다의 굴뚝에서 뽀얀 연기가 나는 마을을 바라보곤 했다. 마치 정복자라도 된 것 같은 마음을 품은 채.
서독과 동독을 갈라놓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무너진 철의 장막을 두고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외치기 시작했다. 그런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운이 천지를 요동할 때, 나는 나만의 방에 틀어박혔다. 동생과 쓰던 방에 있던 책장을 세로로 막아 마치 두 개의 방이 있는 것처럼 나눠서 작은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었던 게 기억난다. 좀처럼 공부하려 하지 않던 국민학생 동생에게 괜히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자신은 영어 공부를 한다면서 실상은 AFKN 방송에 빠져 놀았다. 영어 공부를 위해 어머니께 졸라 구입한 중고 흑백 TV는 영어 공부보다는 미군 방송을 보며 팝송 뮤직비디오를 보는 수단이었다. 부모님과 우리 방 사이에 다른 가구가 살아 어쩔 수 없이 분리된 특이한 구조의 아지트에서, 흑백 TV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던 나는 자신만의 세계를 꼭 만들겠다고 바랐던 것 같다. 사춘기가 늦게 와 방황이 많았던 고등학교 때 그 판잣집 골방에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직업반에 가야 하나 하면서 시작된 화려한(?) 방황에도 불구, 나는 어느덧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학교의 가장 높은 곳에 내가 다니던 공대 봅스트 홀이 있었다. 이 건물은 구조가 특이했는데, 앞과 뒤의 건물이 층층마다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곳에서 바라본 한강의 야경은 정말이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멋진 풍경과는 달리 강 건너 화려한 서울 시내의 야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무거웠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i Shostakovich)의 삶을 그린,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을 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음악원 옥상에서 임박한 독일군의 침공을 기다리는 듯한 불안감에 휩싸인 그를 만날 수 있다. 차이라면 그는 독일군을 경계했지만, 난 보통 삶을 갈구했던 것이 다를 뿐이다. 낮이고 밤이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내게, 그 공대 건물 난간은 잠시 달콤한 휴식을 주었다. 그 난간에서 난, 저 강 건너에서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저 대열에 끼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들에 휩싸인 채, 봅스트 홀 난간 어깨에서 주제넘게 짐짓 거들먹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밤들이 기억난다.
그리고 오십이 넘은 지금, 나는 주말에 별일이 없다면 출판 단지를 찾는다. 마흔 중반쯤 인생에 대해 커다란 이정표가 생겼고, 조직에 충성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회의를 느꼈던 것도 같다. 이직한 직장에 적응은 예상보다 녹록지 않았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업무 강도와 매일 같은 야근에 힘들어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주말이면 책을 읽었다. 파주 출판 단지에 어느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왜 이런 인생의 낙을 여태껏 모르고 살아왔던지! 그 후로 나는 아예 파주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말았다. 아내와 내가 현재의 집으로 이사 오게 된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도 역시 출판 단지와 가까워서였다.
어렸을 때의 뒷산, 판잣집의 골방, 공대의 난간, 그리고 파주 출판 단지는 모두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아지트가 되어준 고마운 장소다. 네 장소의 공통점은 나는 무엇인가를 항상 바라보며 희구(希求)했다는 것이다. 세계를 정복하는 유치한(?) 기개를 품었던 뒷산. 그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흑백 TV를 통해 세계를 영접하고 싶었던 내가 머물렀던 그 습기 찬 골방. 하루빨리 졸업해 사회에 나가 내 꿈을 펼쳐 보이는 날을 기다리던 그 공대 난간에서의 한탄. 그 모든 순간, 나는 미지의 불안을 느끼며, 더 멋지게 될 나를 아득하게 바라고 바랐다.
지치지 않고 바라는 이유는, 나의 갈구 저 속 깊이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을 품지 않고 절망하고 주저앉았다면, 아마도 오늘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때마다 나의 아지트들은 내게 안식처가 되고, 힘이 되었다. 너무 힘들고 지쳐도 다시 돌아오면 늘 나를 반겨주던 아지트들. 나는 그 아지트에서 무엇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조금씩 성장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 당시에는 내가 품었던 고민과 좌절의 회초리가 주체할 수 없이 거대하고 사나웠다고 느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며 생각해 보니 별거 아니었던 것으로 여길 만큼 성장했다. 그런 나만의 장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누구나 가슴에 품는 저마다의 아지트가 있다. 그곳에서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때론 남몰래 꿈과 희망을 품으며 미래를 계획하기도 한다. 자신에 집중하며 꿈을 품을 수 있는 아지트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복이다. 조금 이상해 보여도, 자신만 생각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갖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