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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May 03. 2017

지금은 밤산책을 위한 계절

밤이 깊다. 선선한 날씨, 인적 드문 길거리. 조용한 곳에서 걷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생각이 정돈되는 느낌이다. 방에 있으면서 어지럽혀진 마음의 부산물을 청소하고 다시 새로운 공기로 마음을 환기한다. 쉬지 않고 걸으면 제법 숨이 차다. 가끔씩 멈춰서 쉬고 싶어 질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걷는 건데 이대로 쉬고 이동하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다.


어찌 되었든 참 걷기 좋은 계절이다. 초여름의 열기가 느껴지던 오후의 날씨가 사라지고, 선선함과 적막감이 남은 그 풍경은 참 탐이 나는 풍경이다. 꼭 하루를 걸어야지만 오늘의 임무를 완수한듯한 느낌이라 할까. 여하튼 수사가 길었지만 참 걷기 좋은 날씨다.


산책이 일상의 걷기와 다른 점은 ‘관찰’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길거리의 연인, 친구들, 또 그동안 지나쳐왔던 아파트들, 숲길, 간판 등. 시선이 잠시라도 머물게 되면 마음도 조금씩 움직인다. 벤치에 앉아 속삭이는 연인을 보며 과거의 나를 보기도 하고, 빌딩에 어지렵혀진 간판들을 보며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친구들끼리 신나게 이야기하는 풍경을 보면, 나도 그 순간에 그 세계가 전부였던 그 느낌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보통 일상적인 ‘걷기’는 출발지와 목적지가 정해진 활동이다. 산책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른 점은 ‘과정’이 다르다. 이런 방향으로 가볼까 하다가도 금세 생각이 바뀌면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을 만난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삶일지라도 그 삶 속에서 내 과거를 본다. 부녀의 산책길에서 나와 부모의 정을 , 뛰는 사람을 보며 운동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본다.


군상은 다양하지만 나는 결국 나를 보고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서 나의 눈으로 나만의 세계를 재창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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