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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ul 10. 2020

감정으로 차려진 식탁

새벽에 일어나 캡슐 커피를 내린다. 커피 향을 맡으면 빛줄기가 들어오듯 정신이 선명해진다. 커피가 가지고 있는 각성적 효과는 물리적이지만 습관에 가까운 것 같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 30년 정도가 됐다.


고등학교 다닐 때 웬디스라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새벽 출근이라서 첫 차를 타고 종로에 도착하면 번화한 거리는 텅 비어 있다. 하지만 매장 안은 개장 시간에 맞추어 분주했다.  웬디스는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아침 메뉴를 판매했다. 스크램블, 베이컨, 토스트 그리고 커피세트메뉴였다.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었다. 인스턴트커피에서 느낄 수 없는 커피 향이 매장을 채웠다. 커피 향이 코로 들어오는 순간 더운 여름에 찬 얼음물을 마시면 닭살이 돋듯 정신에 닭살이 돋아 온 신경이 일어선다. 초콜릿에 달콤 쌉쌀한 맛이 향으로 느껴졌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타벅스 같은 커피 전문점이 많지 않았다. 커피 머신이 아닌 갈아진 원두를 커피 메이커에 내려 먹는 원두커피가 최첨단이었다. 향에 끌려 커피가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 모닝커피로 느슨한 정신을 팽팽하게 조였다. 열여섯 살. 커피 한잔이 인생으로 들어왔다



식탁은 마음을 가꾸는 정원이다. 아름다운 정원은 짙은 녹음에 정원수, 꽃나무, 이름 모를 들풀, 잔잔하고 앙증맞은 꽃들이 어우러진다. 매일 차려지는 식탁은 정원처럼 감정에 나무, 꽃, 풀로 채워지듯이 다양한 감정이 아름답게 어우러져야 한다. 짙은 녹색의 정원수처럼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끓인 스튜, 봄에 첫 수확한 딸기로 만든 꽃 같은 샐러드, 들풀처럼 평범하지만 향과 맛이 담긴 루꼴라 넣은 오일 파스타로 감정 식탁을 차린다.


30년이 지났어도 새벽에 커피 향은 열여섯 살에 느꼈던 감정을 불러온다. 음식은 육체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같다. 음식을 보고 추억에 메이기도 하고, 감정에 메이기도 한다. 우울하고, 화나고, 기쁘고, 슬프고, 숨 쉬는 것처럼 감정이 호흡한다. 호흡하는 감정에 우리는 식탁을 차린다. 화가 나고 짜증 나면 맵고 시원한 것을 찾고, 우울할 때는 혀가 놀랄 정도에 단맛을 찾는다. 감정에 비추어 음식을 찾는다. 육체적 배고픔을 넘어 감정을 내어 보내기 위한 식탁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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