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공사가 시작되었다.
바닥, 현관, 유리창, 건물에 기둥만 남겨 두고 다 철거했다. 철거하는 소리가 조용한 동네에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소리에 동네 어르신들이 구경을 나오셨다.
“도대체 뭐가 들어오길래. 저걸 다 부숴?”
“그러게, 대충 장사할게 아닌가 봐?”
“ 저걸 다 부수면 돈 많이 들어갈 텐데……”
동네 분들에 대화에는 호기심과 걱정이 뒤 섞여 있었다. 어르신이 말을 걸었다.
“ 여기 사장님 이신가 봐요. 무슨 가게가 들어오는 거야?”
“ 네. 커피 마시고 밥 먹는 식당 하려 구요……”
어르신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씀하셨다.
“ 커피 집 이구먼……”
나와서 대화를 나눈 동네 어르신들은 그 자리에서 다른 분들에게 커피 집이 생긴다고 호외를 뿌리듯 전했다.
그러는 사이 아침에 시작한 철거가 끝났다. 철거되고 기둥만 남아 있는 가게를 보니 머리가 시원해졌다.
빈 가게를 보며 내가 만들 카페를 상상해보니 애틋하고 뭉클했다.
한편으로는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연산처럼 떠올랐다. 진짜 시작이었다.
***
철거하기 전에 설계도면이 빨리 나와 있어 비어진 공간을 측정하면서 디자인을 할 수 있어서 수월했고,
뉴욕에서 찍어 온 사진, 자료들이 있어서 디자인 콘셉트 결정할 때 도움이 되었다.
설계, 공사, 디자인, 카페에 필요한 설비까지 남편에 선배이자, 사부님이 맡아 주었다. 고객과 컨설턴트로 만난 사이가 아니고 오랜 지인이라서 그런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명확하게 파악하고 필요한 것들을 제시해주었다. 내 생각과 의도를 잘 이해 주는 드림 팀이 생긴 것 같았다.
디자인이 결정되자 목재가 들어오고, 철판이 들어오고, 유리가 들어오고 공사는 콩나물이 시루에서 자라듯
진행되고 있었다. 함께 일하시는 디자인 실장과 현장 실장님, 그리고 사부님까지 우리 현장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숙소를 잡고 일하는 세 분들을 위해서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우리 집 아침 식탁은 일터가 되었다. 매일 현장에서 필요하고 진행되는 것을 식사를 하면서 회의를 했다. 집 옆에 매장을 공사하니까 수시로 의견을 조율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식사 시간에 현장에 대한 회의를 마치면 나는 서점으로 갔다. 레시피 개발을 위해 서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커피와 간단한 샌드위치, 디저트만 할 생각이었는데 사부님에 권유로 요리까지 해야 해서 나는 고시생처럼 책과 씨름했다. 내가 매력적으로 느꼈던 뉴욕의 프렌치 음식점은 가정에서 쉽게 해서 먹을 수 있는 요리들을 대접했다. 엄마가 해주는 요리처럼 담백하고 따듯한 요리였다.
프랑스 요리를 메뉴 판에 넣으려고 생각했을 때 프랑스 요리 학원을 알아보았다. 프랑스 요리에는 이수기간이
길었다. 썰기, 스톡(육수) 내기, 소스 만들기. 굽기, 플레이팅 하기 등 짧게는 6개월에서 1년의 과정이 필요했다.
했다. 공부하는 비용은 내 가게 보증금에 두 배는 넘게 들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독학을 선택했다. 수 만 시간을 엄마로 살면서 주방에서 요리하면서 보낸 시간이 내게 자신감을 주었다.
프랑스 요리 책을 다 샀다.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알랑 뒤카스, 자크 페팽, 피에르 가니에르 프랑스 음식에 역사와 문화 만든 셰프이다. 이 셰프들의 책은 번역 판을 구할 수 없어서 프랑스어로 된 책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려면 프랑스어를 알아야 했다. 사전을 끼고 보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어 과외 선생님을 찾아야 했다. 지인 소개로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알파벳을 배워가면서 요리책을 읽을 수 있는 공부를 했다. 급하게 필요한 레시피는 프랑스어 선생님이 번역을 해 주었다.
프랑스 요리책을 보며 나는 매일 요리를 했다. 나의 요리 스승은 책이었다. 이 책들로 머리와 손으로 익히며
내 요리가 되었다. 배울 수 없는 것은 영화, 영상을 찾아가면서 요리를 해 나갔다.
메인 요리인 프렌치 오믈렛은 눈물겹게 만들어졌다. 수많은 실패 하면서 만들어진 요리는 저녁 식탁에 올려 품평회가 열렸다. 품평회 장소는 하루 공사가 마쳐진 현장이었다. 내 요리는 메뉴 개발이 완성될 때까지 매일 저녁 식탁에서 평가를 받았다.
음식 맛이 짜다, 싱겁다, 느끼하다, 시다, 맵다 여러 입맛에 균형을 찾아갔고, 음식 빛깔, 모양, 플라이팅, 농도를 수정해 가면서 레시피를 완성 해 갔다.
그리고 저녁 식탁에는 요리에 맞는 와인을 마셨다. 매장에서 판매할 와인 리스트를 위해서였다. 비어지는 와인 병은 요리 레시피가 완성될 때까지 쌓여갔다.
레시피 개발을 하면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큰 시장을 다녀야 했다. 남대문 시장, 방산 시장, 황학동 시장,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시장을 다녔다.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공사하는 현장을 들리면 하나씩 완성된 매장을 볼 수 있었다. 아이를 맡기고 일터로 나갔다가 돌아온 엄마가 자라 있는 아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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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진 매장 안에 채워지고, 외부에 간판과 색을 칠하는 시간이 왔다. 나는 가게 이름을 고심한 끝에 지었다.
외식업으로 대박을 꿈꾸면서 시작하는 가게도 아니고, 유명한 셰프도 아니어서 거창한 이름은 부담되었다.
그저 내 공간에 들어오는 이들이 따듯하고 편안하게 쉬었다가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길 바랬다.
이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엄마의 밥상을 연상시키는 의미로 “도어스 엔 테이블”라고 이름을 지었다.
내가 좋아하는 라벤더 색과 남편이 좋아하는 주황색을 가게 색으로 정했다. 이 두 가지 색을 조색해서 만드느라 힘들었다. 잘못 조색하면 남색이 되거나 와인 색이 되었다. 수 차례 시행착오 끝에 채도가 딱 맞는 색이 완성되었다. 건물 외벽을 라벤더를 닮은 보라색으로 칠하고, 가게 이름은 주황색 아크릴로 본트를 떠서 문과 식탁이라는 영어를 한글로 표기해서 보라색 위 간판을 달았다.
외벽을 칠하고 간판을 달았더니 동네가 한번 더 출렁였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채로웠다. 이상하다,
예쁘다, 가볍다, 이해할 수 없다…. 여러 말들이 들려왔다.
회색, 고동색 건물의 동네에서 보라색이 두드러질 거라 생각은 했지만 술렁일 정도까지 될 줄은 몰랐다.
보랏빛, 주황빛을 가진 매장에 조명을 달았다. 밤에 켜진 매장은 섬처럼 떠 있는 것 같았다.
음식 재료 중 가장 엄마와 같은 것은 계란이다. 평범한 재료이지만 가장 귀한 재료이기도 하다.
아플 때 엄마의 맛을 가진 계란이 생각난다. 계란은 마음을 달래 준다.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맛. 편안한 목 넘김으로 고소하고, 소화가 잘 되어서 든든하다. 다시 힘이 나고 엄마의 품 같은 맛이다. 차가운 가슴을 데워 주고 지친 영혼을 품어줄 식 재료 계란을 이용하는 요리를 추천한다.
계란찜 같은 요리를 찾다가 프랑스 북부 로렌 지방의 키슈(Quiche)라는 디저트를 알게 되었다.
디저트를 메인 요리로 변형시키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디저트인 키슈는 타르트 도우에 양념한 계란 물을 붓는다. 나는 이 도우 타르트를 감자로 대체했다. 그런데 감자가 가지고 있는 전분 때문에 자꾸만 계란
넣은 감자 전이되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시키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나는 감자를 강판에 매일 갈았다. 그 덕에 팔목은 두꺼워지고 근육이 생겼다. 가족들은 실패한 오믈렛을 매일
먹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계속했다. 전분을 얼마나 빼야 하고, 온도는 얼마를 유지해야 하는지 알아내고자 매일 오믈렛을 구웠다.
계란 백 판의 실패를 딛고 알아낸 레시피를 소개한다.
8시간 동안 간 감자를 물에 담그고 완전히 녹말 제거한다. 그리고 물기를 뺀 간 감자를 고슬고슬하게 기름에 볶는다. 볶은 감자 채가 엉기지 않게 잘 식혀서 냉장고에서 하루 동안 차갑게 만든다. 이렇게 만든 감자 도우에 그 위에 그뤼에르 치즈를 갈아 얹고, 양파, 버섯을 올리고 우유, 육수, 계란을 풀어서 양념한 계란 물을 위에 붓는다. 그리고 오븐에서 90분 정도 굽는다. 노란색이 약간 갈 색 빛이 돌 때까지 지켜보고 계란 물이 익어 부풀어 오르면 포일을 덮고 시간을 채워 익힌다. 익은 오믈렛은 종이 포일을 덮고, 젖은 리넨 행주를 덮어 촉촉함을 유지하면서 찬 바람에 식힌다. 식는 동안 단단해지고 다시 데웠을 때도 모양이 그대로 유지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믈렛은 나이프로 우아하게 썰어지는 메인 요리로 탄생된다. 메인 요리에 소스가 곁들이 것이 프랑스 요리의 스타일이어서 고소한 크림소스를 더했다. 함께 먹으면 촉촉하고, 고소함이 증폭된다. 접시에 소스를 붓고 그 위에 오믈렛을 올리고 후추나 허브를 토핑 해서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