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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Oct 02. 2019

좀체 하기 어려운 다짐

<강산무진> / 김훈 소설집

...김훈은 남들이 쉽게 알지 못하는 전문용어로 소설적 언어를 대신 함으로써 소설적 언어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깨트리고 전혀 새로운 서정을 획득하고 있다. 소설이 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언어로 소설을 써보는 것, 이는 그의 소설의 배면에 깔린 가장 기본적인 형식 충동이다.

죽음을 통해 우리는 현대문명 속에 중첩되어 있는 기원의 시간을 비로소 감지하게 된다. 죽음이 아니면 존재와 영겁의 기원 사이의 유대감을 깨달을 일이란 이 첨단의 현대문명 속에 도무지 없다. 시간을 역진화해 가는 존재의 퇴화만이 우리들을 먼 조상에게로 데려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죽음 앞에선 현대인과 원시인들 모두 적어도 평등하다.

...중년의 나이란 이 느닷없는 삶의 반전에 대책 없음, 그것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 김훈은 이것이야말로 허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허무란 좌절과 방황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일상에 대한 수락을 전제로 한다. ... 김훈은 이 허무와의 대면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국면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초월도 아니고 인내도 아니다. 다만 수락일 뿐이다. 그러나 이 수락을 통해 삶은 살 만한 것이 된다. 소설은 이 수락을 통해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위안한다.


-신수정 해설 <세속 조시의 네안데르탈인> 중에서






오랜만에 김훈.
역시 탁월하고 깊이가 다르다,
나는 그보다 수십 년 뒤쳐져 삶을 배우므로 어쩔 수 없이 매번 닿을 수 없는 그것에 탄복한다.

기자 출신 다운 디테일, 자꾸만 등장하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하릴없이 기분이 무너져 내렸으나
그것이 해설자의 말마따나 수락을 전제한 허무에 닿는 것이므로 힘겹지만은 않았다.

끝내,
육체의 끝인 죽음이 숙명인 인간으로서
삶 속에서 죽음을 두고 끊임없이 씨름할 수밖에 없구나.

아직 ‘잘 죽을 수 있는 삶을 살자’는  패러독스를 뱉어낼 나이는 아니지만은
시작이 그랬듯 끝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니

나는 그리 살자고 어렵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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