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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Sep 24. 2020

상상 속 오대양 건너기

<모비딕> / 허먼 멜빌

다시 한번 말할 테니  듣게. 자네는   낮은 층을  필요가 있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판지로 만든 가면일 뿐이야. 하지만 어떤 경우든, 특히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정한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엉터리 같은 가면 뒤에서 뭔가 이성으로는 알지 못하는, 그러나 합리적인 무엇이 얼굴을 내미는 법이야. 공격하려면 우선  가면을 뚫어야 ! 죄수가 감방 벽을 뚫지 못하면 어떻게 바깥세상으로 나올  있겠나? 내게는   고래가 바로  코앞까지 닥쳐온 벽일세.”

...오오, 인간들이여! 고래를 찬미하고, 그들을 본받아라! 그대들도 얼음 속에서 따뜻한 체온을 유지해라. 그대들도  세상의 일부가 되지 말고  세상 속에서 살아라. ... 하지만 이런 미덕을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쉽고, 그러면서도 얼마나 가망 없는 일인가.  베드로 대성당 같은 돔을 가진 건축물은 얼마나 드물고, 고래만큼 거대한 생물은  얼마나 드문가!

1492년에 콜럼버스가 왕과 왕비를 위해 소유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에스퍄나 국기를 아메리카에 꽂았을 , 아메리카는 ‘놓친 고래 아니고 무엇이었던가? 인도는 영국에게 무엇이었던가? 결국 멕시코는 미국에게 무엇이 될까? 모두 ‘놓친 고래.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는 ‘놓친 고래 아니고 무엇인가? 모든 인간의 마음과 의견은 ‘놓친 고래 아니고 무엇인가. 그들이 가진 종교적 믿음의 원칙은 ’놓친 고래 아니고 무엇인가. 표절을 일삼는 사이비 미문가에게 철인의 사상은 ‘놓친 고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커다란 지구 자체는 ‘놓친 고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독자들이여, 그대도 역시 ‘놓친 고래이자 ‘잡힌 고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행복은 결코 지성이나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나 연인, 침대, 식탁, 안장, 난롯가, 그리고 전원 등에 있다.

...따라서 내면에 슬픔보다 기쁨을  많이 가진 인간은 진실할  없다.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진실한 사람은 ‘슬픔의 인간이고, 모든  중에서 가장 진실한 책은 솔로몬의 책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전도서> 정교하게 단련된 비애의 강철이다. ‘모든 것이 헛되다 완고한 세계는 그리스도가 출현하기 이전인 솔로몬의 지혜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우리의 삶에도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결같은 전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정해진 단계를 거쳐 나아가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  유년기의 무의식적인 도취, 소년 시대의 맹신, 청춘 시절의 의심(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운명), 이어서 회의,  다음에는 불신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만약에 심사숙고하는 성년기의 평정 단계에서 정지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단계를  거치고 나면 우리는 다시  단계로 돌아가서 유아기와 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 ‘만약에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작가 멜빌은 인간의 모든 역사를 비극으로 보고,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의 지리적 팽창을 비참과 오염의 확대로 보고, 바다와 별을 포함한 우주의 생성을 무언가 위대한 존재가 저지른 과오로 인식한다.

-옮긴이의 덧붙임 중에서







7 8 시작,
8 26 마침.

올여름에는 모비    읽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작가의 지식 대방출인가,

작가의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들어 있는가,

작가 자신은 그렇다 치고 이걸 옮겨  김석희 님은 도대체  대작업을 어떻게 해냈나,

어렵다 어려워 등등의 생각으로 다리를 수만 번 떨어가며 읽었으니.

그가  책을 써낸  1851.

31 이 책을 썼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이렇게  호흡을 가진 글을 써낼  있다고?

아무리 옛사람들이 현재의 우리보다 빨리 ‘어른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내가 야심 있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다면 그의 글에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비극으로 끝날 것이 보이고,  여기저기에 비극적인 결말이 암시되어 있긴 했지만 

해피앤딩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끝까지 희망의 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비극.

그런데, 바라지는 않았지만  비극에 안타깝기보다 수긍하게 되는 것은 그가 보는 세계관에 어느 정도 내가 동의하기 때문이었을 거다. 

제국주의가 노골적이었던 그때와, 여전히 놓지 못하고 ( 눈에는) 패권 싸움이나 하고 있는 현재가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아니,  치밀해진 지금 환멸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그의 마음이  닿아서다.

특정한 존재를, 국가를 우월하게 여기는 마음은 역사의 끝까지 가고야 말까.

씁쓸한 마음은 여기까지.
  반여의 대장정을 마친 나에게 박수를 보내련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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