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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oad Movie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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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Jan 03. 2023

더이상 여행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2022.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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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말, 너무 식상한 말이라는 거 알지만 이 기분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 도시가 갖고 있는 게 많아서, 여유로운 마음이지만 즐기느라 여간 바쁜 게 아니다. 잘 누리고 있다는 뜻이리라. 


 뉴욕에 오기 전엔 혹시나 눈치만 보다 오게 되는 거 아닐까 염려가 되었던 남편의 고모님은, 오히려 뉴욕에 머무는 내내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셨다. 선교지에서 30년 넘게 살아오시다 어쩌다 미국에 오신 후 몇 년째, 이다음은 '그분'께 맡기며 기다리고 계시는 고모님. 내가 감히 집안의 한 어른을 나의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겠지만, 내가 본 고모님은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계신 분이다. 남편을 비롯한 남편의 가족들에게 내가 가장 부러운 점이 바로 이것인데, 결혼하고 몇 년쯤 살다 보니 이유를 알 수 있게 됐다. 시할머님의 사랑 덕분이라는 걸. 그 시절에 어쩌면 자녀들을, 특히나 남녀 구분 없이 이토록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로 키워내셨는지를 나는 남편을 비롯한 어른들의 숱한 증언들을 통해 확인했다. 하여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이 시할머니라고 말한다. 


 나는 그와 조금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탓에, 내 마음의 반응을 통해 그런 분들을 알아보게 된다. 예컨대 자존감 높은 분들은 자기주장도 확실한 편이라 아랫사람으로서, 게다가 멘털이 약한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주장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런데 그와 더불어 자신이 틀린 것이나 모르는 것에 대해 확실히 받아들이고 나이를 불문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보이는 분이라, 나는 그분의 주장에 마음이 꼬이지 않았다. 잠깐 그 말이 신경 쓰여도 한 번 털어내자 마음먹으면 되는 정도로 매번 끝이 났다. 


 태어나자마자 선교지에서 선교사의 자녀로서 살아온 동생들은 워낙 관계에 능숙해, 나와 아이를 정말이지 편하게 해 주었다. 사실 오기 전에는 그들을 위로하고 와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코소보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가족들에게 훨씬 많이 위로받고 그저 편하게 여정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환경을 제공받은 셈이다. 


 3년 전보다 아이가 큰 덕분인지 아이를 다루는 일도 조금 수월해진 기분. 아직은 아이가 헤아릴 수 있는 게 넓지 않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는 민망한 상황이 없지 않았지만, 그 모든 걸 상쇄시키는 게 하나 있었다. 예전에는 아이가 어려서 같이 보고, 느끼고, 감동받고 싶어 하는 지점이 나와 어긋났다면, 그 지점이 조금씩 겹치게 되었다는 거다. 그야말로 같이 여행하는 기분이 제법 든다. 이처럼 이번 여행 중 아이가 컸다는 것을 나는 함께 감정을, 감동을 나누는 것으로 가장 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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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3주가 지나 남은 시간이 2주 남았을 때, 나는 문득 뉴욕에 오기 전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상황 속에 흘렸던 눈물과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게 마치 수년 전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기대하지 못했던, 거의 완벽에 가까운 회복을 느끼며 나는 이 여행이 필요했기에 허락되었구나 확신했다. 내 흐트러진 중심을 바로잡기 위해, 사랑이 있는 곳으로 내가 왔다는 걸 느꼈다. 그러니 흔들리지 말라고, 아파하지 말라고, 의심하지 말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좋은 여행이라도 긴 여행의 끝엔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지치게 되는데, 지치기는커녕 힘이 쌓여 있음을 느끼며 나는 감사 이상의 감동을 느꼈다. 그러므로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이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이 도시와 가족들에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표현하리라고, 더불어 나에게도 끝까지 소홀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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