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코아 Apr 02. 2024

그렇게, 나는, 공황장애 환자가 되었다

지독한 동거의 시작

'띵똥띵똥 띵똥 땅땅땅'. '띵똥띵똥 띵똥 땅땅땅'.

익숙한 소음임에도 거슬린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능숙한 솜씨로 휴대폰 알람을 끈다.

시계는 보나 마나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을 거다.

좀비처럼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아침잠이 많아 매일 아침이 고난이지만, 돈은 벌어야지.

한 때 지옥 같던 이 루틴이, 이제는 남들처럼 싫은 정도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퇴근을 생각하고, 월요일부터 주말을 생각하고, 월급날에 잠시 기쁘고, 그렇게 여느 평범한 회사원처럼 산다. 좋아하는 영화의 개봉을 기다리고, 회사의 점심 식사 메뉴를 고대하며, 주말은 뭘 하고 보낼지 설렌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대던 내가 삶의 정상(正常)을 찾았다는 게 감사하고 신기하다.

그간의 과정을 담았다. 내 글의 제3 원칙을 지키며 썼다.


1. 솔직하자.
2. 재미있자.
3. 위로와 공감이 되는 글을 쓰자.


글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을 따랐다. 일기 형식을 차용했는데 언젠가 꼭 써보고 싶은 형식이었다. 하지만 내용자체는 따분한 일기보다는 소설과 비슷하게 쓰고자 했다. 읽는 동안 재미있게 술술 읽혔으면 한다. 내게 있어 적어도 타인의 삶을 들여보는 건 설레고, 즐겁고, 감사하고, 슬프고,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글이 되기를 바란다.







2017.10.16(월)


기기분석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 후에는 2시간짜리 실험 수업을 들어야 했으며 오늘이 마감기한인 자소서를 최종 수정해서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있을 모의면접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 뿌예졌다. 눈을 비볐다. 눈을 비비니까 어지러웠다. 그래서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저으니 더 어지러웠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숨을 쉬어도 산소가 들어오는 것 같지 않았기에 코를 더 크게 벌리다 결국에는 입을 벌렸는데도 자꾸 이산화탄소만 들락날락 거리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눈앞은 더 희뿌여졌고 칠판의 글씨는 지워졌다.


나는 벌떡 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교실을 뛰쳐나갈 거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손을 들고 수업을 마저 못 듣고 교실을 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교수님께 설명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교수님은 못 본듯했다. 더 번쩍 손을 들었다. 이번엔 분명히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셨다. 뭐지 싶었지만 다시 손을 더 높이 들었다. 이번에도 교수님은 눈길을 흘릴 뿐이었다. 쿵쿵쿵 쿵쿵쿵 쿵쿵. 또각 거리는 초침 소리를 앞질러 심장은 더 빠르게 펌프질 해댔고 포토샵으로 배경을 지우듯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은 사라졌다. 희뿌연 안갯속에 나와 내 심장, 이상하리만치 빨리 뛰는 내 심장만 존재했다.


그제야 나는 교실을 뛰쳐나갔다. 이대로 여기서 쓰러지면 어쩌지 겁이 났다. 그래서 119를 부를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119를 누를 수 있을 만큼 용감하지 못했고 결국 벽을 짚으며 겨우 학교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도로에서 택시를 붙잡아 타고는 가장 가까운 내과로 가달라고 했다.



택시는 종합병원 앞에서 멈췄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심장을 부여잡고는 병원입구로 들어갔다. 겨우 접수를 마치고는 엎어지듯 대기실 의자에 쓰러졌다. 몇몇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소심한 나로서도 몸을 일으킬 힘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희박한 공기에 질식돼 죽을 것만 같았다. 일초가 정말 일 년처럼 흘렀다. 나는 이렇게 중환자인데, 내 차례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이 지나고서야 내 이름을 간호사가 불렀다. 진찰실로 들어섰다. 상태를 말해보라는 의사의 질문에 숨을 못 쉬겠다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어지럽다고 했다. 청진기를 대고, 눈을 보고 이런저런 체크를 하더니, 추가로 심전도, 혈액, 엑스레이 검사를 해야겠다고 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순차적으로 검사를 마쳤다. 그리고 링거도 처방받았기에 한 시간 동안 링거를 맞았다. 링거를 맞아서 그런 건지, 적어도 여기는 혼자 죽게 놔두지는 않을 병원 안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어서 그런 건지 심장박동은 점차 제자리를 되찾아갔다.


링거를 다 맞은 후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다시 진찰실을 찾았는데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안도감과 의문감이 밀려왔다. 그러면 갑작스레 발병한 내 병명은 뭐란 말인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의사도 갸우뚱하더니 갑자기 눈을 번쩍였다. 혹시 정신적 문제일 수 있으니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안 쉬어졌는데 정신적 문제라고? 의사는 연이어 말했다.


"공황장애 일 수 있습니다."


신기했다. 티브이에서만 듣던 단어였다. 주로 유명연예인들이 힘들었던 과거를 토로하며 꺼내어 놓는 단어였다. 그걸 보면서 저렇게 인기가 많고 돈이 많은 연예인들도 각각의 힘듦이 있구나 싶어서 많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단어가 나를 향했다.



병원을 터덜터덜 빠져나왔다. 병원을 나서자 그제야 남아있던 현실의 짐들이 떠올랐다. 일단 실험수업을 빠졌다. 실험 보고서를 써야 하는 데 큰일이었다. 그리고 자소서도 써야 하는데. 면접준비는 어떡하지. 교수님은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할 힘이 없었다. 우선은 집에 가고 싶었다. 지하철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한 시간 동안 머리는 정리되지 않은 채 뿌옜고, 현실은 갑갑했고, 자꾸 눈앞엔 한 단어만 어른거렸다.


'공황장애'


그때는 몰랐다. 이 아이가 날 꽤 지독하게 괴롭힐 줄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