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쪽만 상조휴가 대상이라고요?
엄마 쪽은 개인월차를 쓰도록 하세요.
2018.10.15 (월)
퇴근 무렵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외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 오늘밤을 넘기기 힘드실 것 같다네."
엄마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퇴근을 하고 할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갔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한눈에 보기에도 곧 다가올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신 듯이 많이 수척하고 잔잔해 보였다.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내일 출근을 위해 한 시간 반 가량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2018.10.16 (화)
새벽에 결국 비보가 날아들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검정 정장바지와 검정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을 했다. 부장님과 사수들에게 차례로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전했고 상조 휴가를 쓰고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회사에는 분명 상조휴가가 존재하지만 '아빠 쪽 부모님 및 친척'에게만 적용이 된다는 거였다. 외할아버지는 '엄마 쪽 부모님 및 친척'에 해당하기에 상조휴가 적용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개인 월차를 썼다.
(참고로 이 캐캐묵은 내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그 사이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지만 회사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을 가는 길에 아빠와 나, 동생이 동행했다. 아빠는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음에도 연신 '잘 죽었다'는 말만 쏟아냈다. 장례식장에 오래 있지 말고 집에 빨리 가자는 말도 함께였다. 저절로 힘이 들어가 이를 꽉 깨물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엄마의 퉁퉁 부은 눈과 벌게진 얼굴을 마주하자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다가갔다. 외할아버지의 염을 진행할 때,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라고 했지만 아빠는 애한테 시신을 왜 보라고 하냐면서, 부정 탄다는 말을 하며 화를 냈다. 대성통곡을 하는 엄마와 종일 불뚝한 표정으로 화만 내는 아빠. 난 그 사이 어디에 위치해야 할까. 아빠에 대한 혐오감과 분노가 치솟았다 엄마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물들었다 그냥 무, 무(無)인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시공간에서 벗어나 혼자 둥둥 우주에 떠있는 상상을 했다. 그래야 그 순간을 버틸 수 있었다.
2018.10.18(목)
어제까지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을 지키고 다시 출근을 했다. 이틀 내내 아빠를 향한 증오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써서 그런지 온몸에 진이 빠진 채였다. 컨디션과 기분이 좋지 않으니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치솟았다.
상조휴가에 대한 부당함도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다. 아빠 쪽의 경우에는 삼촌, 숙모, 고모, 고모부 모두 상조휴가 대상이었지만, 엄마 쪽은 그 어떤 분도 대상이 되지 못했다. 아직도 이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게 내가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고 다니고 있는 회사라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조업이다 보니 단연 남직원 수가 많았고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자화장실도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남녀 신입사원 비율이 거의 비등해졌다. 심지어 동기들 입사 때는 여자로 다 뽑고 싶을 정도로 면접을 여자들이 잘 봤으나 어쩔 수 없이 남녀 비율을 동등하게 맞췄다는 얘기를 임원 입에서 직접 듣기도 했다.
외국인 비율이 높았고 글로벌 회사를 지향했다. 그랬기에 더욱 이해가지 않았다. 물론 장점만 있을 수 없고 단점만 있을 수 없기에, 장점도 많은 회사였으나 간혹 이상한 데서 상당히 고리타분한 부분이 있었다.(상조휴가 외에도 반차가 없다.) 아직도 기조는 변하지 않아 상조휴가 제도가 여전히 아빠족으로만 유지되고 있으나 10년 뒤에는 변해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