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 파문
몸이 으슬으슬하다. 밤새 한기가 들어 잠을 설쳤다. 농에서 두꺼운 이불을 꺼냈다. 온몸을 칭칭 감았다. 그러나 몸의 떨림은 줄어들지 않았다.
새벽 6시. 출근 시간이 다가온다. 축축 처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화장실로 욱여넣는다. 가장 뜨거운 방향으로 수전을 돌린다. 샤워기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열기 가득한 물을 내뿜는다. 통근 버스를 탄 후에는 그대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무슨 정신으로 업무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금요일이니까,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퇴근 후에는 총알같이 집으로 가서 종합감기약을 먹고 누웠다.
37.8도. 오한, 인후통, 근육통을 동반한 미열이 지속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1399에 전화를 한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전염은 아주 무섭고 빠른 기세로 확산됐다.
질병관리본부 콜센터 담당자가 전화를 받는다.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동선이 겹치는 곳이 없고 울산에 추가 확진자가 없으므로, 일단 집에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한다. 그래도 열이 나면 근처 안심병원을 방문해, 의사와 검진 및 상담 후에 검사가 필요하면 검사를 권유했다.
약 기운이 돌면 열이 떨어졌다, 약 기운이 사라질 때쯤 다시 열이 오르는 게 반복됐다.
월차를 내고 회사를 가지 않았다. 저번주 사내에서, 통근버스에서, 기숙사에서 마주쳤던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혹시 열이 나는지, 아프지 않은지 물었다. 다행히 모두 괜찮다는 답을 들었다.
병원을 갈까 했지만, 고민하는 사이 열이 다시 떨어졌다. 병원을 갔다가 괜히 코로나가 아닌데, 되려 진짜 코로나에 감염이 되어 돌아오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이 당시는 지금과 다르게 코로나 확산 초기로, 코로나에 걸리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기다. 매일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감염자의 동선을 뉴스로 방영하던 시기다.)
하지만 저녁에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고, 1399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내일 안심병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부장님과 사수, 총무부에 전화를 돌렸다. 접촉했던 동기와 후배들에게도 다시 연락을 돌렸다. 내일 회사를 못 간다고 알렸다. 다들 음성일 거라고 했지만 불안해하는 게 느껴졌다. 부장님은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집에만 있었는지 계속 동선을 확인했다.
몸살기는 지속됐고, 아예 잠을 자지 못했다. 오전 중 되도록 빨리 진료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았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계속 총무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 증상과 증살 발현 시기 등에 대해서 질문을 퍼부어댔다. 택시기사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 택시라서 답을 못하니 내려서 답을 하겠다고 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기사님은 자꾸만 뒤를 흘깃흘깃 쳐다봤다. 눈치가 보였다. 마스크를 더욱 깊숙이 올려 쓰고 '나는 앞으로 아예 입을 안열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의도를 전달하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도착할 때까지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 증상을 말한 후, 호흡기 질환 검사 줄을 기다린다. 내 검진 차례가 왔다. 의사에게 토요일부터 발열이 시작되었고, 동선이 겹치진 않으나 불안해서 검사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목이 부었으니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코로나일 확률이 낮지만 본인이 원하니 검사를 해주겠다고 했다. 단, 검사비는 동선이 겹치거나 증상이 심각한 경우가 아니므로 자비부담이라고 했다.
검사를 위해 줄을 서있는데, 대부분이 50~60대로 보였다. 어르신 몇몇이 이 시기에 무슨 클럽이냐며 젊은이들을 욕하고 있었다. 나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여 시선을 회피했다. 검사는 간단했지만 꽤나 독했다. 코와 목 쪽 점막을 깊숙이 찔러 훑어내린다. 오늘 검사를 받은 사람 중에 가장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이런 불안한 마음 와중에, 칭찬은 잠시나마 기쁘게 해 줬다.
집으로 돌아가서 총무부와 통화를 했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누구와 밥을 먹었는지, 출퇴근은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답을 했다. 그리고 접촉했던 동기와 후배 리스트를 말했다. 20여분 뒤에, 언급했던 동기와 후배들에게서 연락이 쏟아졌다. 내 덕분에 조퇴당했다는 거다.
'앗싸. 개이득.'
그렇게 말해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했다.
부서 동생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언니, 이상한 소문이 돌아요. 언니가 폐에 이상소견이 있다는데요?"
황당했다. 나는 이제 막 검사를 받고 왔다. 결과가 나오려면 내일은 되어야 한다.
동기들에게서도 전화와 문자가 밀어닥쳤다.
"너 괜찮나? 괜찮다. 음성일 거다."
동기 단톡방에 위로랍시고 저런 말을 올린 동기도 있었다. 진짜 걱정이 되면 개인톡으로 물어봐주지. 나는 제발 이 사태가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드러난 게 없는데. 하... 한숨이 나왔다.
이미 회사 전체에 나는 확진자로 소문이 났다. 어떤 근거도 없는 거짓 소문은 사실인 양, 빠르게 전파되었다. 나는 일일이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면서도 소문에 질식되어 갈 듯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혹시나 진짜 양성이면 어쩌지. 너무나도 불안했다.
전무님께서도 연락을 주셨다.
"걸어 다니지, 카풀은 왜 하냐."
농담인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는 모든 게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럴 거면 셔틀버스도 금지시키지 그래요.'라는 말을 뱉고 싶었다.
동기와 카풀을 한 것, 룸메와 기숙사에서 밥을 함께 먹은 것, 사내에서 동기들을 마주쳐 몇 마디를 나눈 것, 모든 게 내 탓이고 비난이 되어 꽂혔다.
그러자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를 확산시킨 사람들에게 불만이 불쑥 치솟았다. 이태원발 2차 유행만 아니었어도 코로나가 잠잠해져 가고 있어 덜 불안했을 텐데. 자꾸만 나쁜 마음과 안 좋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억울했다. 나는 떳떳했기에 오히려 회사를 위해서 자비로 검사를 받은 건데. 20~30대는 무증상 감염자도 많다고 해서 내가 코로나면 내 주변 접촉자들도 무증상 감염자 일 수 있으니, 나라도 검사를 받아서 확인을 해봐야겠다 싶었던 건데. 이 모든 상황이 엿같았다. 이태원 클럽을 간 사람들이 너무 싫으면서도, 그들이 검사를 안 받고 숨어버린 이유를 아예 이해 못 할 것 같진 않았다. 회사를 위해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데도 검사를 받아봤자, 돌아오는 건 신상공개와 손가락질, 거짓 마녀사냥인데, 그들은 얼마나 더 큰 욕을 먹을까 봐 두려울까.
나는 이날도 겨우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음성입니다.'
총무부에서 전화가 와서 9시 20분에 잠을 깼다. 결과가 나오면 알려주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이미 문자로 검사결과가 도착해 있었다. 곧바로 총무부에 결과를 전달했다. 그 후 부장님과 사수, 부서 동생, 룸메, 동기와 후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친한 동기 동생이 말했다.
"경비실에서 열 잴 때 언니 체온이 높았다고 얘기하고 다니던데요."
이번엔 친한 동기 언니가 동기 단톡방에 질문을 띄웠다.
"코코아 폐병드립 처음 퍼뜨린 사람이 누구야?"
룸메도 연락이 왔다.
"언니 폐 CT 찍었어요? 타 부서에서 언니 폐 CT 찍었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연예인들이 왜 악성루머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여전히 실체 없이 돌아다니는 거짓 소문들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음성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얹혀있던 덩어리가 가슴속에서 내려가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 때문에 더 아팠나 보다.
너무 피곤했으나 또 잠이 안 왔다.
출근을 했다. 경비실에서 체온을 재는데, 경비원 분들이 미안했는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마주치는 사람들 마다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왔다. 스트레스 때문에 더 아팠던 것 같다고 웃으며 답했다. 다들 그랬겠다고, 마음고생이 심했겠다고 위로했다.
부장님께 '심려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전무님도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으셨다.
"스트레스 때문에 더 아팠던 것 같아요."
"갑자기 스트레스받을 일이면 XX대리 밖에 더 있는 거 아니가? XX대리가 보기랑 다르게 스트레스 많이 주나 보네."
나는 너무나 당황했다. 양성일까 봐 스트레스받았다는 말이었는데.
역시나 전무님은 농담이셨겠지만, 악의 없이 던진 돌에도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XX대리가 얼굴이 벌게져서 다가와서는 쏘아댄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어떡해? 사람을 한 번에 보내버리네."
나는 너무나 당황에 중간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니에요. 그런 말이 아니라, 양성일까 봐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말이었어요."
계속해서 나는 황급히 해명을 했다. 하지만 사수는 여전히 얼굴이 벌건 채 두고 보겠다고 했다.
하....... 정말 고난은 끝이 없구나. 전무님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도 없고.
부서 동생이 다가온다.
"언니. 괜찮아요?"
"응. 괜찮아. 미안하다. 걱정시켜서."
"아니에요. 근데 언니, 이것 봐요."
동생은 자신이 속한 단톡방을 내밀었다.
'코코아 씨, 이태원 클럽 가서 코로나 걸렸다던데요?'
'헐. 대박. 이태원 클럽 당사자였구나. 미친.'
버젓이 음성 판정을 받고 출근을 시작했는데도, 여전히 루머는 활발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아는가?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빨리 퍼지지 않는다는 거다.
이제는 기도 안 찬다.
지난 일주일 동안 코로나 파문을 사내 전체에 일으켰던 나는, 음성 판정을 받자마자 몸이 금세 회복됐다. 이 기간 동안 느낀 게 2가지 있다.
1.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다.
2. 사람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다. 그저 자극적인 가십에 이끌릴 뿐.
나는 때 아닌 감기로 인해, 인생공부를 했다. 회사를 위해 10만 원을 직접 자비로 내고, 검사를 받을 필요 없다는 의료진의 말에도 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돌려받은 건, 악성 루머와 질타였다. 폐병이 있다는 둥, 이태원 클럽을 갔다는 둥, 거짓 소문을 처음 퍼뜨리기 시작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뒤에서 활발히 나에 대해 씹으며 즐기던 사람들이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걱정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억울했고 화가 났다. 하지만 그게 인생이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진 않으니까.
그리고 사람을 정말 쉽게 믿던 나는 이를 계기로 타인에게서 거리를 두는 법도 배웠다. 이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은 항상 동화처럼 화사하지만은 않으니까.
적어도 나는 시류에 쉽게 휩쓸려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동조하는 사람은 되지 않고자 한다. 가뜩이나 인터넷 댓글을 쓰지도 않지만 앞으로도 평생 쓸 일은 없을 거다. 선플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