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코아 Nov 05. 2024

7년 차 우울증 환자의 직장 생존기

어느덧 <공황장애 신입사원 생존기> 마지막화 연재를 하게 됐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판정을 받고 약을 복용한 지 벌써 7년이 되었다. 고로 사회생활 7년 차라는 소리다.


숨이 막혀 회의실을 뛰쳐나가서 화장실에서 숨을 고르던 순간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밤새 울던 순간들, 극심한 우울 감옥에 갇혀 땅굴을 쉼 없이 파고들던 순간들. 무수히 많은 고난과 어둠 속에서 나는 조금씩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그림자를 걷어냈다. 그래서 지금은 괜찮냐고?


NO!!! 단호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버티기 힘든 일을 견뎌 내고 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의 난이도와 압박감의 크기는 커졌고, 책임은 무거워졌다. 신입 때는 실수를 해도 죄송하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면 됐지만, 이제는 창피와 굴욕감을 고스란히 맛봐야 한다.

연차가 쌓였다고 상사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함께 엮여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이상한 사람을 맞닥뜨릴 확률도 더욱 높아졌다. 보고하는 상대도 부장님에서 이사님으로 더 부담스러워졌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들은 내 이해의 폭을 벗어난다.(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에이씨 그렇다고 누가 일을 저런 식으로 처리해, 불쑥 화가 치솟는다.


직무 특성상 유독 사람을 상대할 일이 많은데, 그게 참 힘들다. 모든 회사에 장단점이 있겠지만, 우리 회사의 단점은 보수적이라는 거다. 내규도 보수적이라서, 외가 쪽은 경조사 휴가를 주지 않고, 그 흔한 반차도 없다 <공황장애 신입사원 생존기 18화 참조>. 그러나 그것보다 사람들이 보수적인 게 더 힘들다.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길고 규모가 엄청 크진 않은 회사이다 보니, 고인물이 많다. 즉, 물갈이가 안된다는 거다. 고인물은 썩는다. 고인물들 대부분이 40~50대로 부서장 내지 부서에서 높은 직위를 담당하고 있고, 그걸 그대로 배운 그 밑의 직급도 함께 물들어 가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걸 못 견딘 사원들과 대리들이 많이 떠났다.

물론 다른 어떤 곳을 가도 꼰대는 있고, 또 꼰대는 흔희 MZ라고 부르는 이들을 '요즘 것들'이라며 못마땅해할 게 자명하다. (나는 어중간하게 끼인 세대로, 꼰대에게는 MZ, MZ에게는 꼰대이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유독 우리 회사에 그런 '꼰대-꼰대라기보다는 독불장군, 사이코가 맞는 것 같은 데, 꼰대라고 통칭하겠다'가 많다는 거다. 타회사에서 이직해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전 직장에서는 한 층에 또라이가 1명 있었으면 여기는 각 부서마다 있는 것 같아.'정도이다.

멘탈이 취약한 데 또 하필 사내외로 사람들을 많이 부닥쳐야 하다 보니 힘이 부칠 때가 많다. 주말에 연락 와서 사적인 대화를 늘어놓는 사람, 어린 여자라고 무시부터 깔고가는 사람, 자기 실수를 늘 남 탓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있다.(훨씬 심각한 일들도 많지만, 무서워서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7년 동안 3번의 부서이동을 신청했다. 부장님과 심각하게 상담을 했지만, 결과는 '다음 기회에'였다. 일이 힘든 건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힘든 건 정말 어찌할 수 없더라. 스트레스를 받으면 공황증상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더 자주 나타났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만일을 제쳐두고 병원으로 상담선생님한테로 달려갔다.


3년. 상담을 끊는 데는 3년이 걸렸다. 약은 아직도 최소용량으로 복용 중이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을 잊기까지 또 얼마큼의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여러분에게도 삶을 사는 동안 무수히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리라 생각한다. 신이 있다면 신은 결코 나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견디기 힘든 만큼의 시련만 준다고? 거짓말하지 마. 진짜 신이 있다면 나쁜 인간들을 벌해야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날 이렇게까지나 힘들게 하는 거야 대체? 겨우 일어서면 다시 주저앉히고, 이제는 뛰어볼까 하면 발목을 부러뜨린다.

인생이란 그런 것 같다. 엄청난 행복은 없는 것. 그래서 소소한 일상이 참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걸 나이가 들수록 깊이 느낀다. 단점이 명확하지만 장점도 많은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 수 있는 것.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통장 잔고가 늘어가는 걸 보는 것. 퇴근 후에 저녁을 먹으며 좋아하는 예능과 드라마를 보는 것, 미팅 전 유독 오늘따라 화장이 잘 먹어 내가 예뻐 보이는 것, 퇴근길에 불어오는 바람에 느끼는 상쾌한 해방감, 이 모든 게 다 행복 아니겠는가.


여러분에게도 꽃길만 펼쳐지진 않을 거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이 책만 보면 주식대박 난다.' '이것만 읽으면 부동산 성공한다.'등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 온 세상의 사람들 모두 주식부자, 부동산 부자일 거다.

그래서 '이 책만 읽으면 행복해진다.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도 같은 맥락으로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 무조건 솔직하게 쓰자. 스스로가 솔직하지 못하면 글은 변질되기 쉽다. 변질된 글은 독자의 마음에 닿을 수 없다. 그리고, 재미있자. 재미있도록 노력은 했다만, 그것에는 확신이 없다. 이글이 재미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완결을 냈고 이 글은 내 손을 떠나 독자에게 달려있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이 글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면, 그리고 공감을 했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무수한 걸림돌에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내어 단단하게 땅을 밟고 본인의 인생을 살아나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