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함께한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
진학 상담주간이던 3주 전, 큰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진로 전화상담을 했다. 담임 선생님과는 처음 하는 전화 통화였다.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는 이미 아이와 정했고 별로 할 말이 없던 그때,
"OO이 학교에서 잘 지내나요?"
라는 나의 물음에 선생님은
"그럼요, OO이가 얼마나 똑 부러지고 학교 생활 잘하는데요.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선생님한테도 예의 바르고, 분리수거 담당도 자진해서 맡아서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요. 뭐든 솔선수범하는 모범생이죠."
하마터면
'제 아이가 맞나요? 저희 애는 OO이에요 선생님.'
하고 말한 뻔했다. 우리 딸은 오늘도 아침에 입을 쑥 내밀고 아침을 먹어서 식사 내내 남편과 눈치 보고 불편했고 방은 엄청 지저분하고 옷장과 책상은 난장판인데... 잔소리라도 하려고 하면 원천차단하고 문 닫고 들어가는데...
아이는 현관문 하나를 두고 다른 세계를 오가며 살고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며 새로운 자아로 탈바꿈하며 그곳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내가 알던 그 아이가 아니다. 자신이 속한 학교, 교실, 친구들과의 세상에서 누구보다 도 사회생활을 참 잘한다. 그러다 다시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면 모드를 전환하며 이곳 '우리 집' 세계로 넘어온다. 서로 다른 세상을 넘나드는 '멀티버스 여행자'
딸아이가 어떤 세상을, 몇 개의 세상을 오가며 살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적어도 현관문을 열고 우리에게 걸어오는 모습에서 이 세계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감, 주저함은 없길 바란다. 이곳, 현관문 안의 세상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고 아늑한 세상이길 희망해 본다. 딸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저 현관문을 열고 닫으며 세상을 넘나들까?
어떻게 보면 나도 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진짜 내가 아닌 모습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약간 다른 목소리, 약간의 긴장감, 약간의 경계심, 약간의 가식... 어른이 된다는 건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적절하게 나의 자아를 바꿔치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지금 어른이 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