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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간 무한의 세계로

by 꿈꾸는나비

함께한 사춘기의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곤충과 식물, 동물에 관심이 참 많았다. 마침 동네에 생태 하천이 흐르고 있어 자연스럽게 그 주변의 식물과 곤충들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다. 지나가다 꽃과 나무의 이름을 물어보면 척척 대답해 주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도 줄줄 읊어댔다. 아이 방 책장에는 동물도감과 식물도감, 파충류와 희귀 동물들에 대한 책들로 가득하다.


아이가 얼마 전 동네 하천에서 하전 바닥흙과 수초를 이작은 유리병에 담아왔다. 이런 걸 왜 담아 오나 했는데 나는 몰랐다. 이 작은 병 안에 하전의 생태계가 그대로 담겨 있다는 것을. 아이는 첫날 유리병을 담아 온 그대로 뒀다. 그러자 둘째 날부터 움직이는 생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다슬기와 조개가 흙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 우리 동네 생태하천 설명가가 우리 동네 하천이 수질관리가 잘되어 있어 조개가 많다고 했었는데 그게 진짜였구나 싶었다. 아이는 아마 더 많은 생물이 이 안에 있을 거라며 유리병만 들여다봤다. '대체 있긴 뭐가 있어.'



나의 무지가 무색하게 매일매일 유리병에는 생각지도 못한 생물들이 나타났다. 어떤 날은 아이가 불러 유리병 한 곳을 잘 보라며 알려줬는데 한참을 들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그런 거야?" 핸드폰 카메라의 접사로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명체인 히드라가 촉수를 하늘하늘 움직이고 있었다. 또 어떤 날은 플라나리아가 물속에 있다며 건져 보여주었는데 어릴 때 교과서 속에만 보던 그 모습의 플라나리아가 꿈틀대는 게 보였다. 아이는 자생능력을 확인하겠다며 한 마리를 두 마리로 만들고 키워내 다시 유리병에 넣어줬다. 한 번은 물 몇 방울을 떨어뜨려 현미경으로 보더니 유영하는 노플리우스(갑각류 유생)를 찾았다며 기뻐한 적도 있다. 책상 위 유리병은 아이의 놀이터이자 호기심이자 내가 보고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무언가로 가득한 곳이었다.


나는 아이가 큰 세상을 보길 원했는데 아이는 더 작은 세상을 파고든다. 아이가 보는 유리병 작은 공간에 무한히 펼쳐지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무엇이 되길 원하기보다 아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같이 들여다봐야겠다. 아이의 어깨너머로 나도 같이 신나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아이의 책상 위에 있다 다시 풀숲으로 돌아간 사마귀와 사슴벌레와 거미와 개미들처럼 유리병 친구들도 조만간 다시 하천으로 돌려보내지겠지만 다시 또 다른 친구가 책상 위에 올려질 걸 나는 안다.


오늘도 우리의 사춘기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다. 너는 세상이 궁금하고 나는 네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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