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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Mar 17. 2021

서른, 3년 차 생각보다 잘 먹는 비건입니다

상상하던 샐러드는 제 식탁에 없을 걸요

  다사다난한 비건의 삶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잘 차려입은 오피스룩에 끼얹은 아빠 양말처럼 어딘지 모르게 하나씩 삐걱거렸다.


  맛있는 알리오 올리오에 눈처럼 내린 치즈 가루라든지, 햄 빼고 야채만 넣어달라던 야채김밥에 어묵이 가득이라든지 말이다. 당황스럽지만 웃어넘길 수 있던 사건들로 삶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순항 중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비건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던 3년 전, 3월의 어느 날부터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치 명상을 위한 전초전으로 비건이 되었나 싶을 정도로 신기한 시기에 맞물렸다. 스스로 비건이 되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맞지만 명상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긴 하다. 


  명상을 배우며 만난 이들은 스승님의 가르침에 맞게 어설프더라도 고기를 하나씩 줄여나가는 방법을 배우고 또 실천 중에 있다. 서로 요리한 것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또 함께 비건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해 나간다. 



  인터넷에서 만났던 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였다.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과의 만남이 너무나 기쁘고 가벼웠었다. 족히 40분은 걸어 찾아간 청국장 집에서 만난 미숫가루 슬러쉬에 기뻐하는 소소함을 생각이나 해봤을까. 서로에게 숨겨둔 비건 맛집을 소개하며 추억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소속감도 비건의 삶을 유지하는데 한 몫했다. 특히 예전 친구들과 만날 때와 달리 선택지가 다양해서 더욱더 즐거운 만남이 되었다. 더 있는 그대로의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명상을 하며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만나 함께 독립을 하게 되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처럼 셋 다 비슷한 시기에 채식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리숙하고 엉망진창이었지만 그게 나름대로 서툰 재미를 주곤 했다. 


  초반에는 30분을 빙 돌아 대형 식자재 마트에 가곤 했었다. 무거운 과일을 이고 지고 돌아오다 보면 하루 일정은 끝이 날 정도로 진이 빠졌었다. 그렇게 긴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정 가운데 10분이면 지나갈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하곤 얼마나 허탈했는지 팔이 아픈 것도 까먹은 채로 서로 마주 보고 웃기 바쁜 적도 있었다.  




  근처 공장단지 한가운데 뜬금없이 아주 허름한 중국집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수원에서 채식 중국집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이 멀리까지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소식을 지나칠 수 없었던 우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버스를 타고 1시간을 이동했다. 그리고선 채식 짜장면, 채식 짬뽕, 버섯탕수 그리고 버섯 깐풍기까지 배 터지게 먹고 돌아와 하루를 통으로 날려버렸다. 


  얼마나 배가 불렀는지 가만히 앉아 소화시키는데도 반나절 이상이 걸렸다. 너무 오랜만에 중식을 먹는 기회이기도 했고 그만큼 맛있기도 했어서 무조건 많이 시키고 본 게 화근이었다. 아직도 셋이서 이 날의 이야기를 하며 웃곤 한다. 돌아보니 너무 바보 같은 일이었는데도 그 당시엔 아무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지 않았겠냐고... 


  서른이 되어 맞이하는 독립이기도 하고 성인들끼리 맞춰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울 줄 알았다. 그러나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서 인지 잘 짜인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삶에 스며들었다고 해야 할까. 모난 조각들을 요리 돌리고 조리 뒤집어 맞추다 보면 셋이 딱 맞게 굴러갔다. 나는 요리를 좋아하고 친구는 빨래와 청소를, 다른 친구는 설거지를 좋아했으니 얼마나 효율적인 그림이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재미있는 삶이 시작된 것은 분명했다. 2년 전 수험생이었던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나날들을 살고 있는 것이다.  


 

  틀에 박힌 사고로 사회가 가진 거대한 틀 안에 갇히려 했었던 과거의 내가 있었다. 그렇기에 7년 간의 수험생활도 그렇게 무작정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런 생활이 나를 감옥에 가두는 일이었음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밑그림조차 하나 없이 합격 하나만을 바라 왔으니 더 엉망진창이었을 수밖에. 나중에는 결과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시험에 대한 두려움만 남아 삶을 이어갔던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았을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걱정하고 있는 부모님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삶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조금 더 건강한 나날들을 살아가며 조금 더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삶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실패한 수험생으로서 합격하지 못했으니 마땅히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비난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일이야 말로 지나간 과거에 감사를 보내는 일이지 않나 생각한다.


  스스로 선택한 일들에 책임을 지고 삶을 꾸려나가는 것을 배워가는 요즘이다. 결과를 지향했던 과거와 달리 과정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된 오늘, 이런 시행착오의 과정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살아가고 싶다. 왜냐면 수험생이었던 우리는 결과와 상관없이 너무나 많이 아팠으니 말이다. 


 수험생이기 전에 ‘나’였다는 사실을 과거의 나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보편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래야만 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에서 벗어나 나의 소망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남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라이프스타일로 하루를 꽉 채운 사람이 된다면, 비건에 대한 어떤 선입견들 또한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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