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둑한 통장은 채식의 보너스
중요한 날마다 외식을 해왔다.
개강을 해서, 종강을 해서, 기분이 꿀꿀해서, 오늘은 왠지 놀고 싶어서, 행복해서.
갖은 이유로 바깥에서 밥 내지 고기를 사 먹었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이어져온 습관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퇴근 길의 치킨 한 마리 혹은 가끔 먹을 수 있던 삼겹살이야 말로 부모님의 월급날을 목 빠지게 기다리게 하는 이유였으니까.
그렇지만 요즘은 생활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한 달에 한 번 하던 외식은 일상이 되었고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것이 더 낭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맛있는 걸 먹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어떤 일시적인 충족감, 귀찮음에 대한 대가가 아니었을까. 계속 먹어도 허기지는 어떤 마법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외식이 귀찮아질 때쯤 배달음식에 중독이 되었다. 동생과 자취를 시작했을 때 한참 배달 어플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였다. 여기저기 날아드는 할인 쿠폰과 간편하게 결제하는 신세계를 경험하며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배달을 시켜먹었다.
처음엔 한 끼에 2~3만 원이라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었는데 인간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었다. 왠지 사이버머니 같은 느낌으로 카드를 긁었다. 결제를 누르는 순간 잠깐 놀라기도 했지만(얼마나 빨리 돈이 빠져나가는지...) 나가서 먹는 비용과 귀찮음을 계산하니 이득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솔직히 지갑에 돈이 남아나질 않았다. 버는 돈은 족족 식비로 나가니 나중에는 기분이 이상했다.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전후가 뒤바뀐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들 이렇게 사니까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었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친구도 그랬고 인터넷 상의 많은 사람들도 그랬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앞선 이야기에서 비건의 단점은 배달을 시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반대로 너무 큰 장점이 되어 돌아왔다.
한 달에 80만 원에 육박했던 외식비가 0원에 달하는 달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외식이 어려운 환경적인 문제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건강한 식습관에 길들여지다 보니 바깥의 자극적인 음식은 점점 더 멀리하게 된 까닭도 있었다.
식비의 2/3 정도는 매번 차지했던 고기도 빠지게 되니 장보는 비용도 1/3로 줄어들었다. 제철 채소와 무르익은 과일은 가격도 저렴하고 양이 많아 장바구니에도 포만감을 주었다. 계산해본다면 한 번의 외식비로 일주일의 장을 보는 셈이었다. 아침은 과일로 대체하고 점심, 저녁은 밥을 먹고.
특별한 날에는 조금 더 신경 쓴 채소 요리가 등장했다. 비싼 고기를 사 먹던 과거와 달리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기념일을 맞이한다. 전에는 비싸서 자주 먹지 않았던 채소들도 밥상에 올려보기도 하고 아니면 예쁜 접시에 맛있게 담는 노력을 해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그냥 음식을 사 먹었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함께 먹을 것을 준비하고 과정을 나누고 맛있는 것들을 나눠먹을 때. 힘들고 수고스러울 때도 많지만 배달음식이 채워주지 못한 공허함을 채우는 느낌이었다.
그 외 줄어든 지출 품목에는 화장품이 있었다. 눈물나게 아픈 화농성 여드름부터 시작해서 좁쌀 여드름까지 전부 사라지게 되자 피부 관리를 위해 쓰던 돈들이 모이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피부과에 가서 압출을 받거나 약을 타 오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졌다.
독한 약들을 먹지 않아도 되니 몸에도 더 좋았고 피부에 좋다던 각종 영양크림과 보습제들도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특히 이번 겨울은 정말 수분크림 하나로 끝을 보았다.
생각해보면 다이어트 비용도 어마어마했었던 것 같다. 다이어트 식품, 다이어트 보조제와 여름방학만 되면 의무적으로 결제했던 헬스클럽만 해도 생활비의 몇 배는 되었던 것 같다.
다이어트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었던가. 쉽게 살을 뺄 수만 있다면 아낌없이 투자하곤 했었는데 결과는 반짝하고 사라지는 신기루였고 그마저도 통장과 함께였다. (아니 살과 함께 사라져주세요...)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니 신기하게도 삶의 질과 만족도가 올라갔다. 돈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정말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월급에 쫓겨가며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을 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물론 여가 생활을 할 수 있는 돈이 생기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I am what I eat)”라는 서양의 격언이 있다. 먹는 것이 곧 나를 만든다는 뜻이다. 전에는 음식이 내 몸의 구성요소가 된다는 말로 들렸지만 이제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것을 먹느냐에 따라 나라는 인격이 달라진다면 쉽게 아무거나 입으로 넣을 수 있을까. 채식 하나로 삶의 모든 것이 점차적으로 바뀌어감을 느끼고 있다. 건강해지고 안정적 이어졌으며 풍요로워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채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