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장래는 자신이 잘 안다.
모임에 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자녀교육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 열 살 딸아이를 둔 나는 아직 딴 세상 이야기 같은데, 아마 딸아이가 더 커도 여전히 딴 세상 이야기일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면 젤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
바로 당사자인 자녀의 의사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녀의 의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이유는 아직 어려서 무엇이 중요한 줄 모르기 때문에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으로 탁월한 선택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딸아이에게 미안했다.
'재이야. 넌 부모 잘못 만났구나. 아빤 절대 이래라저래라하진 않을 테니깐.'
난 아직도 모르겠다.
사람의 평균 수명이 4~50년이라면 어떻게든 좋은 학교를 보내 대기업에 취직시키고, 그렇게 잠깐 잘 먹고살다가 환갑 전에 죽으면 딱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이다!
그 긴 삶 중에 십 년도 안 되는 청소년기, 이런저런 좌충우돌과 실패를 맛보지 않으면 언제 그런 경험을 한단 말인가?
자녀가 원하는 것은 자녀 본인이 찾아야 하며 그걸 성취해 가는 과정 또한 본인의 몫이어야 한다.
그 중요한 시기에 자신을 믿고 살면 평생 자신의 의지로 살게 되고, 부모가 하라는 대로 부모의 뜻에 따라 살게 되면 평생 부모에 의지해 살게 된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착실하게 따른 지금의 중년 세대가 이제 와서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우울증에 빠지고, 나이 들어서도 부모 의존율이 높은 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의존적인 사람일수록 행복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외부에서 찾는다.
자식에게 집착하거나, 성공에 집착하거나,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무언가에 집착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라면,
자녀교육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사람일수록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마치 신앙의 척도가 자녀의 스펙에 달린 것처럼.
예수 잘 믿는 증거가, 하나님께 축복받는 증거가, 자녀의 세속적 성공에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예수에 대해 가장 인간적으로 기록한 누가복음엔 유일하게 십 대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으로 십 대 자녀를 둔 부모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호하다.
한마디로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십니까?'이다.
십 대가 되면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나이고 알아야 한다.
예수는 이 땅에 와서 철저히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실패한 삶을 살았는데 왜 기독교인들은 자녀가 예수 닮길 원한다면서도 키우는 것은 바리새인이나 대제사장, 아니면 부자 청년으로 키우려 하는지 모르겠다.
2015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