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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빙하! 프란츠 조셉 & 폭스

지구과학 이야기, 뉴질랜드 지질 기행 3

by 전영식

뉴질랜드의 하늘은 달랐다. 잘 아는 것처럼 태양은 지구의 적도 주변 궤도로 뜨고 진다(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 따라서 남반구로 충분히 내려오면 해를 바라볼 때 오른쪽에서 떠서 왼쪽으로 진다(북반구와는 반대다). 그래서 내 그림자는 북쪽이 아니라 남쪽에 생긴다. 달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달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서 결국 그믐달이 된다.


2025년 6월 북반구(좌)와 남반구에서의 달의 위상변화, 출처: skywalk


이렇게 낯선 환경만큼이나 우리 일행도 숙소에서 낯선 존재였다. 10대 후반에서 잘해야 20대 중반인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 속에 섞여 있으면 눈밭에 까마귀처럼 눈에 띄기 마련이다. 게다가 음식을 준비하는 굼뜬 행동과 메뉴도 더 그랬다. 하지만 옆 자리에 앉은 40~50대 동양인 남자가 더 눈에 뜨였는데 나중에 대화를 해보니 필리핀에서 혼자 왔다고 한다. 어쩐지 이 구석까지 중년 남자 혼자 온 게 두테르테의 비밀 요원 같은 분위기가 풍기더구먼...


프랜츠 조셉의 모텔, ⓒ 전영식


남반구의 가을 밤하늘의 별, ⓒ 전영식


프란츠 조셉 빙하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프란츠 조셉(Franz Josef) 시내의 카페를 찾았다. 날씨가 좋았으니 당연히 밖에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국의 분위기에 섞여 들고자 애를 썼다. 그렇게 스마트해 보이지 않는 젊은이가 모는 지게차가 계속 우리 주변을 뱅뱅 돌고 있었는데 일을 하는 것도 같지만 뭔가를 노리는 것도 같았다. 점점 익숙해지는 서양식 아침 식사를 하는데 멀리서 보이는 프랜츠 조셉 빙하가 풍기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하늘에는 마치 평택 미군기지에 온 것처럼 바쁘게 헬기들이 날아오르고 오고 가고 하고 있다. 재난사태는 아니고 빙하 답사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헬기들이다.


프랜츠 조셉 빙하 ⓒ 전영식


고위도 지역이나 높은 산 등에서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이면 얼음이 되고, 이 얼음이 중력의 영향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면 빙하(Glacier)가 된다. 빙하는 크게 대륙빙하, 곡빙하, 산록빙하로 나뉜다. 대륙빙하빙상(Ice sheet)이라고도 하며 남극, 그린란드 같이 대륙 전체를 덮는다. 곡빙하는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빙하를 말하고, 산록빙하는 곡빙하가 산록에 이른 것이다. 빙상, 빙하가 보다 작게 잘라져 바다에 뜬 것을 빙붕(Ice shelf),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조각을 빙산(Iceberg, 작은 것은 유빙)이라고 한다.


NZ의 빙하



뉴질랜드에는 크게 18개의 빙하가 있다(USGS, 1989). 고지대 빙하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오라키/마운틴 쿡 국립공원 쪽이 더 볼만하다. 웨스트 랜드 쪽에서 접근성이 좋은 빙하는 프랜츠 조셉과 폭스 빙하이고, 센터베리 쪽은 태즈먼 빙하다.


프란츠 조셉 빙하(Franz Josef Glacier, 마오리어: Ka Roimata o Hinehukatere)는 12 km 길이의 빙하로, 뉴질랜드 남섬 서해안의 웨스트랜드 국립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다. 폭스 빙하와 함께 서던알프스산맥에서 해발 300m 미만에 위치한 특이한 빙하 중의 하나이다. 서울 남산이 270m이니 빙하가 어느 정도까지 내려와 있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옆으로 울창한 우림과 접하고 있어 특이한 풍경을 보인다. 두 빙하를 둘러싼 이 지역은 UNESCO 세계유산인 테 와히포우나무(Te Wahipounamu, 그린 스톤(옥)의 산지라는 뜻)의 일부이며, 프란츠 조셉의 빙하 말단에서 합류되는 강은 와이호(Waiho) 강이고, 폭스 빙하에서 유래되는 강은 폭스 강이다.


프란츠 조셉 빙하의 시간에 따른 변화 모습(1886* vs. 2017), 위키미디어: Robert Caldwell Reid, Krzysztof Golik

* Illustration from the Rambles on the Golden Coast of New Zealand by Robert Caldwell Reid (1886)


프란츠 조셉 빙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를 따서 독일 탐험가 줄리어스 폰 하스트에 의해 1865년에 명명했다. 위 그림에서 보면 약 130년 사이에 프란츠 조셉 빙하가 많이 후퇴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구 전체의 빙하가 대부분 이런 형편이다. 간단한 점심거리를 챙긴 후 드디어 폭스 빙하로 출발이다. 뉴질랜드 웨스트랜드에는 몇 개의 만년 빙하가 있는데, 지금의 위치에서는 가장 접근성이 좋은 빙하가 폭스 빙하다. 당연히 가장 장엄하고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트래킹 코스 입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30분 정도의 간단한 트래킹 후에 만날 수 있다.


폭스 빙하


폭스 빙하(Fox Glacier, 마오리어:Te Moeka o Tuawe)는 뉴질랜드 남섬의 서해안에 위치한 웨스트랜드 국립공원에 위치한 13km에 이르는 긴 빙하이다. 이 빙하의 이름은 1872년 당시 이곳을 방문했던 뉴질랜드의 수상, 윌리엄 폭스 경을 따서 지은 것이다.


폭스 빙하 전망대 안내판, ⓒ 전영식


마오리족의 구전에 따르면, 히네 후카테레(Hine Hukatere)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다녔는데, 어느 날 애인인 투아웨(Tuawe)와 함께 등산을 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눈사태를 맞아 투아웨는 애인의 곁을 떠나고 히네 후카테는 상심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이를 불쌍히 여긴 하늘의 아버지 링기(Rangi)는 그들을 얼려 폭스 빙하로 만들었다고 한다.


네 개의 산악 빙하로 뭉쳐져 만들어진 폭스 빙하는 서던알프스산맥에서 해안 쪽 아래로 13 km 길이에 너비 2.6km에 달한다. 해발 300m 밖에 되지 않은 울창한 우림 사이에 있는 진귀한 빙하이다. 비록 지난 100년간 많이 후퇴를 했었지만, 1985년 이래로 점점 나아가고 있다. 2006년에는 1주일에 약 평균 1m 정도를 전진했다. 2009년 1월에는 빙하의 끝부분이 여전히 전진을 하고 있었고, 수직면 또는 돌출면이 여전히 붕괴되고 있는 중이었다. 빙하의 유출로 폭스 강이 형성되었다. 최후의 빙하기에는 빙상이 현재의 해안선 너머까지 뻗었었고, 그 이후에 후퇴를 하면서 많은 빙퇴석을 남겼다. 마테손 호수는 이러한 작용으로 생겨난 것이다.


폭스 빙하 들머리, ⓒ 전영식


빙하지역임을 증명하듯 입구에는 빙하쇄설물로 가득한 뿌연 물이 힘차게 흐르는 하천이 있다. 웨스트 랜드는 산악의 경사가 급해서 물살이 세다. 넓은 강폭은 계절에 따른 유량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고 바위에서 모래까지 모암에서 떨어져 나온 쇄설성 물질이 가득하다. 드랜즈 알파인 기차에서 보았던 산화된 붉은 암석이 여기서도 보인다. 곤충,동물도 있고 암석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절대로 내려가서는 안된다. 또 저 강물은 쇄설성물질 때문에 밀도가 높아 넘어지면 일어서기 어렵다. 절대로 들어가면 안된다.


빙퇴석이 보이는 폭스강 하류 ⓒ 전영식


비가 많은 웨스트랜드지방은 가을(4월) 임에도 양치류와 이끼류가 울창한 숲이 인상적이다. 폭스 글래시어 사우스 사이드 워크(Fox Glacier South Side walk) 길은 잘 관리되어 있고 사람들도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다. 낮은 위치 때문에 숲에 가려 주변 산은 보이지 않지만 폭스강의 물소리가 들려 제대로 가고 있다는 편안함을 준다. 이정표는 필요 없다.


폭스 빙하 뷰포인트 트레킹 코스ⓒ 전영식


폭스 빙하 뷰포인트 트레킹 코스 ⓒ 전영식

뷰포인트는 주차장에서 2km 정도로 30분 내외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단 가는길에는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없으니 사전에 해결하고 올라가야 한다. 뷰포인트는 상하단이 있는데 아래쪽이 더 보기 좋다. 폭스 빙하는 이미 여기에서 5.5 km 상류로 후퇴되어 있다. 빙하말단에서 산정상부까지는 이제는 대략 10km이다.


빙하는 산을 깎고 스스로 골짜기를 만들며 물길을 냈다. 주위 산에는 마찰의 흔적으로 암석층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이 빙하 위에는 올라가 볼 수 없다. 빙하 자체에는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폭스 빙하의 모습 (2025) ⓒ 전영식
왼쪽에 있는 폭스 빙하가 후퇴하며 선상지에 남긴 빙퇴석이 가득하다. ⓒ 전영식
빙하 침식면을 따라 암석이 흘러내린 테일러스가 보인다 ⓒ 전영식
퇴적물의 분급이 불량한 전형적인 빙하하천인 폭스강 ⓒ 전영식


빙하지역임을 증명하듯 빙하 탐방로 입구에는 빙하쇄설물로 가득한 뿌연 물이 힘차게 흐르는 하천이 있다. 웨스트 랜드는 산악의 경사가 급해서 물살이 세다. 각종 집체만 한 바위서부터 주먹만 한 바위까지 강변에 분급이 안된 채 흩어져 있다. 이러한 지형을 모레인(moraines)이라고 한다. 빙하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기후변화에 따른 빙하의 후퇴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어서 결국 폭스 빙하도 멀찍이 도망가 있었다.


빙하로 오르는 길은 초가을이지만 각종 이끼류와 양치류가 숲에 가득하다. 험한 흙길이 아니라 편하게 갈 수는 있었지만 약간의 오르막길은 감수해야 한다. 비록 빙하에 왔는데 만져 보거나 올라가 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는 없다. 마치 해운대에 갔는데 바닷물에 손도 안 담그고 온 것 같은 그 기분이다. 그래도 빙하를 보았다는 흥분에 하루 종일 들뜬 마음이었지만 반면 기후변화의 단면을 본 것 같아 복잡한 마음이 든다.


참고문헌


Satellite image atlas of glaciers of the world, USGS, Professional Paper 1386, Edited by: Richard S. Williams Jr. and Jane G. Ferrigno, 1989, https://doi.org/10.3133/pp1386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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