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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건물로 아름다운 퀸스타운

생활 속 지구과학 이야기, 뉴질랜드 지질 기행

by 전영식


뉴질랜드 남섬 관광의 중심지는 뭐니 뭐니 해도 퀸스타운(Queenstown)이다. 한국의 봉화군 인구수인 3만 명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 연간 130만 명의 전세계 관광객이 다녀간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긴 80km의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의 가운데쯤에 위치한 퀸스타운은 리마커블스 산맥(The Remarkables, Kawarau, 최고봉 더블 콘, 2319m)을 마주 보고 있다. 호수 북쪽 끝은 서던알프스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수상스키, 제트보트, 관광유람선, 스키, 패러그라이딩, 번지점프(1988년, 세계 최초 상업 번지 점프, 카와라우 다리(Kawarau Bridge)), 골프, 하이킹 등 온갖 맥티비티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춘 곳이다. '세계 어드벤처 관광의 수도'라는 명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거리에는 각종 고급 브랜드샵이 즐비하고 맛집이 많아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땅값, 집값도 비싸서 숙박비도 주변보다 더 받는다. 이렇게 세련된 관광지이지만 시작은 소박했다.


퀸스타운 부두, ⓒ 전영식


퀸스타운은 사실 19세기 골드러시의 열풍 속에서 탄생했다. 1862년, 인근 애로우 강(Arrow River), 샷오버 강(Shotover River)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금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작은 마을이 형성되었고, 1863년에는 공식적으로 '퀸스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여왕에게 걸맞은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골드러시가 막을 내린 후, 퀸스타운은 한동안 조용한 농업 및 목축 중심의 작은 마을로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뛰어난 자연경관이 주목받고 1912년 TSS Earnslaw이 건조되어 운행을 시작하면서 관광 도시로서의 잠재력이 부상했다. 특히 1950년대부터 스키장 개발과 관광 인프라 확충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시내에는 골드러시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역사적인 건축물과 현대적인 시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퀸스타운과 편암(Schist) 이야기


퀸스타운의 독특한 풍경과 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암석이 바로 편암(片岩, Schist)이다. 편암은 셰일이나 이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생기는 평행한 줄무늬인 편리(schistosity)를 갖는 변성암이다. 이 지역의 기반암을 이루는 암석인 편암은 퀸스타운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지질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도시는 온통 편암 투성이다. 서부 헤이스트(Hasst)에서 이동하는 내내 거의 편암 노두를 실컷 볼 수 있다.


뉴질랜드 남섬의 편암 벨트, 노란 표시가 퀸스타운이다, Mortensen et. al, 2010


퀸스타운 주변의 편암은 주로 중생대 쥐라기 후기에서 백악기 초기(약 1억 5천만 년 ~ 1억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해저에 퇴적된 셰일과 이암이 판구조 운동으로 높은 압력과 열을 받아 중간 정도의 변성 작용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 변성 작용으로 인해 편암 특유의 줄무늬 구조인 편리(schistosity)가 발달하게 되었다. 퇴적암인 셰일이나 이암은 변성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점판암(slate) -> 편암 -> 편마암(gneiss)로 변성된다.


편암으로 축대와 화단을 만들었다. ⓒ 전영식


퀸스타운은 '오타고 편암대(Otago Schist Belt)' 또는 '헤이스트 편암대(Haast Schist)'의 일부에 속한다. 퀸스타운을 둘러싼 리마커블스 산맥, 크라운 산맥(Crown Range) 등 서던알프스의 여러 산지와 계곡에서 넓게 노출된 편암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스키퍼스 캐니언(Skippers Canyon)이나 애로우 강 주변은 편암의 특징적인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이 지역에서 채석된 편암은 특유의 질감과 색상으로 인해 건축 자재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편암을 품은 퀸스타운의 대표 건축물 3선


퀸스타운의 건축물들은 주변 산맥에서 구하기 쉬운 편암을 주재료로 사용하여 독특하고 통일된 디자인을 보여준다. 퀸스타운 시내를 걷다 보면 편암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이는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자재를 활용했던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 미학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편암은 오랜 시간 열과 압력을 받아 형성된 변성암으로, 압력에 수직 방향으로 발달하는 편리가 특징이다. 건축가들은 이 돌을 사용하여 건물이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풍경에 녹아들게 만들었다.


1. 세인트 피터스 교회 (St Peter's Anglican Church)


세인트 피터스 교회, ⓒ 전영식


1912년에 완공된 아담하고 아름다운 성공회 교회이다. 퀸스타운의 초기 건축 양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교회의 두꺼운 외벽은 모두 인근 아서스 포인트(Arthur's Point)에서 채취한 편암으로 정교하게 쌓아 올렸다. 거칠고 투박한 질감의 편암은 교회가 오랜 세월 동안 풍파를 견뎌온 역사를 보여주며, 서던알프스 산맥을 시내 중심으로 옮긴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뉴질랜드 고유의 목재로 마감한 내부는 외벽 돌의 차가움과 대조적으로 나무의 따뜻함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2. 윌리엄스 코티지 (Williams Cottage)


윌리엄스 코티지, ⓒ 전영식


퀸스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 중 하나로, 1864년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이다. 마린 퍼레이드(Marine Parade)에 위치해 있으며, 초기 정착민이었던 존 윌리엄스의 집이었다. 비교적 가공되지 않은 투박한 형태의 편암과 목재를 함께 사용하여 지어져, 골드러시 시대의 건축 양식과 당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시에서는 자랑하고 있다.


3. 구 지방법원 (Old Courthouse) / 현재 갤러리 및 상점


구 지방법원, ⓒ 전영식


몰 애비뉴(Mall Avenue)에 자리한 이 건물은 1876년에 법원으로 지어졌는데, 현재는 갤러리와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편암 블록을 사용하여 지어진 이 건물은 공공건물의 위엄과 견고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편암의 질감과 색상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욱 깊어져 클래식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이처럼 퀸스타운은 그 땅을 이루는 편암이라는 지질학적 유산 위에 역사와 문화를 쌓아 올린 깊이 있는 공간이다. 필자는 퀸스타운을 '세계 편암 건물의 성지'로 명명하고 싶다. 퀸스타운을 방문하게 된다면 발밑의 땅과 주변의 건축물에 담긴 편암의 이야기를 함께 느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퀸스타운에서 편암 노두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케이블카인 스카이라인(Skiline) 탑승장 후면인듯 하다. 깔끔하게 잘 정돈된 절개면에는 풍화되지 않은 편암의 노두를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 편암이 생성된 후에 지구조운동을 받아 완만하게 습곡을 이룬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카이라인을 안타도 볼 수 있다.


스카이라인 승강장 후면의 편암 절개지 ⓒ 전영식


그 밖에도 시내 건축물들은 적극적으로 돌을 건물 외관에 적용하고 있는데 주로 편암 블록을 사용하거나 점판암을 사용하여 벽면을 장식한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런 석재의 사용은 도시의 품격을 높여 주고 푸근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점판암을 이용한 상점 외벽 ⓒ 전영식
점판암을 이용한 상점 외벽 ⓒ 전영식
편암 블록으로 건물 외관을 만들었다 ⓒ 전영식


건물뿐만 아니라 도시를 구성하는 계단, 벤치, 화단, 도로에도 편암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을 잘 볼 수 있다. 우리 도시는 획일적으로 인공적인 재료들로만 구성되어 이렇게 다양한 암석의 활용을 보기가 힘들다. 백 년이 넘은 건물이 아직도 세계인들을 끌어들이는 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고, 이를 볼 수 있는 관점이 있어 거리를 걷는 내내 참 즐거웠다.


편암을 이용한 화단 겸 벤치 ⓒ 전영식
계단 주변의 벽에도 편암을 사용했다 ⓒ 전영식
다양한 암석을 이용한 벤치와 도로 포장 ⓒ 전영식


퀸스타운은 아이스크림의 결과 무늬가 다채롭듯이 암석에서도 여러 가지 무늬, 농담, 색상을 찾아볼 수 있다. 전체를 볼 수 있는 디자인적인 시각이 있다면 얼마든지 간단하게 멋진 오브제를 만들 수 있다. 꼭 디자인이 과하게 들어가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도 더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미적인 요소를 사용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퀸스타운의 아이스크림과 편암 벤치 ⓒ 전영식


참고문헌


JK Mortensen , D Craw , DJ MacKenzie and JE Gabitesa, Lead isotope constraints on the origin of Cenozoic orogenic gold systems in the Southern Alps and northwestern Otago, South Island, New Zealand, New Zealand Journal of Geology and Geophysics Vol. 53, No. 4, December 2010, 295 305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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