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가 맨부커상을 받고 화제에 오르고 나서야, 나는 한강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때쯤 처음으로 밀리에서 작가 한강을 검색했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조금 읽었던 것 같다.
아주 조금 읽었는데도 이 소설이 매우 무겁고 어두워 더 읽으면 안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슬프고 아픈 이야기가 내 일상에 너무 큰 충격을 줄까봐, 화들짝 데인 듯이 읽기를 관뒀다.
그러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원어로 읽는 기쁨" 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자꾸만 그의 글로 떠밀렸다. 누군가의 고통을 섬세하게 다루는 한강 작가의 글이 나는 여전히 두려웠지만, 단편 하나라도 제대로 읽어봐야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제1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 과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를 빌려오게 되었다.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고른 건, 한강 작가 말고도 다른 작가의 소설을 같이 읽으면, 다른 작가의 소설로 한강 작가의 글이 조금은 희석되어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였다.
시집 역시 비슷한 마음인데, 소설보다는 덜 이입해서 힘든 게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을 조금만 읽으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끝까지 읽어 버렸다. 죽은 사람이 방에 찾아왔는데 태연하게 차를 대접하며 옛 이야기를 하다니,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혼 여직원에 대한 회사의 부당한 퇴사 요구와 그에 저항하는 출근 투쟁, 언론사의 부당 대우에 대한 기자들의 항의를 소재로 불의를 눈감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 상황들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야기 중간중간 나오는 희곡도 흥미로웠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웬 이상한 이름의 중들 사이에 애처로운 소녀와 관음보살이라니. 그런데 희한하게 더욱 몰입되는 희곡 속 이야기.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가 거기 있었다. 똑같은 고통을 겪지는 못할지라도, 안 보이는 척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의 증언.
고통은 겪는 것도, 보는 것도 어려워 늘 눈 감고 마는 내게는 역시나 읽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래도 단편일지라도 끝까지 읽었다. 마음은 무거워졌지만 겁나는 마음은 사라져 있었다.
역시 한번은 끝을 봐야 시작도 할 수 있다. 이제는 한강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장은 말고,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