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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혜 Nov 19. 2024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집 다섯 살 예민이가 예민하게 구는 사례들을 나열해 보자.


1. 머리 묶기


하나로 묶을 때는 무조건 정중앙에 와야 한다. 높이 올려 묶으면 안 되고 낮게 내려 묶어야 한다. 자기 기준에 조금이라도 옆으로 치우치거나 위로 올려 묶으면 무조건 다시 묶으라고 난리다. 기준이 매우 섬세해서 엄마가 맞추기 아주 힘들다. 물론 머리 묶다가 자기도 짜증내면서 울고, 엄마도 참다참다 소리지르는 경우가 많다.



2. 쉬 닦기


쉬하고 닦을 때 무조건 가운데 세 번, 양 옆에 두 번씩 닦아줘야 한다. 엄마가 쉬 닦아줄 때 아빠나 언니랑 얘기하다가 원하는 횟수대로 닦아주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울고불고,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냄.



3. 옷 소매 접기


티셔츠나 내복 상의 같은 걸 입었는데 조금이라도 길이가 길면 손목 소매를 접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접은 길이가 똑같아야 함. 양 손목을 대 보면서 똑같은지 안 똑같은지 재 본다. 안 똑같으면 몇 번을 다시 접으라고 하면서 운다.




4. 외출복 고르기


조금이라도 크거나 작아서 불편하면 안 입는다. 그러면서도 패션은 포기 못함. 편하면서도 친구들이 다 부러워할 만큼 예쁜 옷이어야 함. 아침마다 옷장에 있는 옷을 다 꺼내서 고른다. 입을 만한 옷이 항상 8벌 넘게 있는데도 왜 나는 예쁜 옷이 하나도 없냐며 운다. 계절이 바뀌어 같이 옷가게에 가서 자기 마음에 드는 신상을 사왔음에도 한 두 번 입고는 어떤 수가 틀렸는지 입지 않는다. 엄마는 옷값 아까워 죽을 지경이다.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고른 옷은 가려지면 안 되므로, 얼어죽을 지경이라도 절대 잠바를 입지 않는다. 언니는 오리털 패딩 입고 등원하는 날씨에 본인은 잠바를 절대 안 입음. 선생님은 진지한 얼굴로 "OO이는 왜 잠바를 안 입히시나요?"라고 엄마에게 물어보신다. 첫째는 오리털 입히고, 둘째는 얇은 잠바 하나 안 입히는 엄마가 혹시나 계모가 아닐까 의심하실까 두렵다.



5. 머리띠 하기


엄마가 머리 묶어주기를 포기했다. 그냥 풀어헤치고 가기로 했다. 그러나 패션은 포기 못하므로 예쁜 머리띠를 고른다. 머리띠를 했는데, 머리띠 뒤로 머리가 튀어나온 게 보인다. 이게 왜 튀어나오냐며, 머리가 하나도 안 튀어나오게 하라고 억지를 부리며 운다. (야... 네 두상이 그 모양인 걸 어떡하라는 거야...)






이외에도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 예민함과 강박의 콜라보가 날마다 엄마를 미치게 만든다.


매우 불안도가 높고, 겁도 많고, 예민한 아이.


나는 아이가 이럴 때마다 부글부글 끓어올라 폭발하기를 수백 번 하고, 혹시 내가 분노조절장애가 아닐까 심리상담도 받았다.


첫째 어린이집 원장님 말만 듣고 돌도 되기 전에 어린이집에 보내서 애가 이렇게 된걸까, 후회도 여러 번 한다. 갓난아기 키우기가 지긋지긋하게 싫었던 그때, 조금만 더 참고 아이와의 애착에 더 신경썼더라면 지금 고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데 어쩌나. 지금이라도 아이에게 잘해주는 수밖에.


작은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무서운 게 많고 불안한 아이는 엄마보다 스스로가 더 힘들겠지.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이고, 불편해서 힘들지."


"뜻대로 안 돼서 속상했네."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엄마가 같이 있잖아."


우리집 예민이를 안고서 가장 많이 해주게 되는 말들이다.


자랄수록 아이도 나도 조금씩 더욱 편안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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