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닉네임 제니앤은 Jenny& 이다.
내 영어 이름 Jenny 에 &이 붙었다.
&에서 닉네임이 끝난 이유는 & 다음에 무엇이든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때 내 블로그의 이름이 Jenny & anything 이기도 했다.
그런데 Jenny& 을 들여다 보는데,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하면서, 결국 그 무엇도 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어젯밤 아이들에게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라는 그림책을 읽어주게 되었다.
샘과 데이브는 월요일에 뜬금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 을 찾아내겠다는 목표로 계속 땅을 파 내려간다.
한참을 파도 어마어마한 것은 없다.
샘과 데이브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본다.
너무 밑으로만 팠나봐, 옆으로 파 보자.
둘이니까 서로 다른 방향으로 파 보자.
이 길이 아닌가벼, 다시 아래로 파자.
열심히 팠지만, 그들은 결국 핑크 다이아몬드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쳐 잠이 든다.
샘! 데이브!
처음에 시작했던 그 한 길로 조금만 더 파면 돼.
강아지가 핑크 다이아몬드가 어디 있는지 힌트를 주잖아.
딴 길로 새지 말고, 그 길을 쭉 파라니까.
이들을 보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외쳐 댔다.
그러다 급 현타.
나도 이러고 있는 거 아냐?
이 길로 가다보면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하고 조금 가다가
아, 이 길이 아닌가, 그럼 저 길로 가보자, 하다가
아, 또 아닌가벼, 오 저기도 괜찮군.
가능성이라는 희망 아래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결국 나는 헤매기만 하고 지치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뭔가 열심히 하는데, 성취가 나오는 수량까지 가지 못하고,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명목 하에 너무 빨리 그만둬 버리는 게 아닌가.
흠.
Jenny& 이라니 이런 바보 같은 이름이 또 있나.
그래서 샘과 데이브는 푹 자고 일어나서 집에 들어가 초콜릿 우유와 과자를 먹는다.
비록 핑크 다이아몬드는 찾지 못했지만,
땅을 팠던 그 경험이 바로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 이었다고 얘기하면서.
제니앤이 삽질을 멈추지 못하는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닉네임일지라도,
뭐 어때.
삽질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일 수도 있지.
핑크 다이아몬드,
내가 가졌으면 더 좋았겠지만,
못 가져도 뭐.
나는 지금 안락한 집에서 초콜릿 우유와 과자를 먹을 수 있잖아.
좋은데?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나에 대해 반성하려다가, 대단한 자기합리화로 끝났군.
이것도 좋지.
그래서 닉네임은 계속 제니앤인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