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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Sep 23. 2024

탄단지채만 챙기면 되는 거 아냐?

아이들이 오늘도 TV를 반찬 삼아 밥을 먹고 있었다.


EBS 키즈 채널에서는 계란말이, 멸치볶음, 콩자반, 시금치 나물 등 각종 반찬이 올라와 있는 밥상을 앞에 두고 밥과 국만 먹는 아이가 나오더니,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교훈을 전했다.


"반찬이 이거 밖에 없는데 어떻게 골고루 먹으라는 거야?"


첫째의 목소리에 내가 차린 밥상과 TV 속 밥상을 비교해 본다.


흰 쌀밥과 항정살 구이, 방울토마토, 오이가 전부다.


국도 없고 밑반찬도 없다.


애들 밥상이 너무 단촐한가,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져 본다.





반성은 무슨!


반찬 많이 해줘도 먹지도 않잖아!


이 밥상은 육아 7년 동안 수 천의 밥상을 차린 내 경험의 결과라고!


고기든 나물이든 질기다고 안 먹고, 짜다고 안 먹고, 맵다고 안 먹고, 식감이 물렁하다고 안 먹고!


그래도 밥상에 탄단지채 다 챙겼다!


갓 지은 쌀밥에 탄수화물 있지, 항정살에 단백질과 지방 있지, 방울토마토와 오이에 생채소 있지!


"뭐 없어 보여도 이거 잘 먹으면 골고루 먹는 거야."





열심히 요리하고 차려줬는데, 생각만큼 먹어주지 않아서 분노했던 세월이 길다.


그 후로 식판식을 하면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채소 등 주요 영양소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하며 밥상을 차렸다.


식판에는 많으면 다섯 칸의 공간 밖에 없다.


이 다섯 칸에 주요 영양소의 음식들이 각각 들어가면, 영양의 결핍 없이 골고루 먹이는 셈이 된다.


아이들이 크면서 식판을 쓰지 않게 됐지만, 이런 나의 미니멀 상차림은 변하지 않았다.


이혜림의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를 읽으면서 다음 문장에 공감했다.



뉴질랜드 이후의 세계 여행에서도 우리는 한 그릇의 식사를 즐기거나 밥과 한두 가지 반찬만으로 아주 간소하게 먹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먹지 않는 삶의 가벼움을 알게 된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너무 많이 먹지 않는 삶의 가벼움.


너무 많지 않은 상차림의 가벼움.


우린 이미 한국 사회 속에서 넘치는 영양 가운데 살고 있다.


이 가벼움이 엄마에게는 편안함을, 아이들에게는 건강을 선사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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