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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라 Aug 11. 2022

요상한 마법소녀와 한국의 입시 지옥

seri, 비완 작가의 <매지컬 고삼즈>

주의: 이 글은 해당 작품의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상하다’는 표준어일까요? 방금 사전에 쳐 봤는데 아니라는군요. ‘요상(요常)하다’는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는 뜻으로, 규범 표기는 ‘이상하다’입니다. 그런데 ‘요상하다’의 동음이의어가 있네요. 눌러보니 법률 용어인 ‘요상(要償)하다’는 ‘보상을 요구하다’라는 뜻이라고 해요.


Seri 작가 글, 비완 작가 그림의 <매지컬 고삼즈>는 요상한 작품입니다. 첫 화부터 건장한 남자 교사가 분홍색에 프릴과 리본이 잔뜩 달린 짧은 드레스를 입고 있질 않나, 거대 금붕어가 학교를 공격하질 않나, 기껏 변신에 성공한 주인공 마법소녀가 괴물 금붕어를 상대하기 위해 붙잡는 것이 사랑스러운 요술봉이 아니라 회칼이질 않나… 소위 ‘병맛 개그’가 판을 치는 작품입니다. <요술공주 샐리>로 시작하여 <세일러 문>, <꼬마 마법사 레미> 등 일본으로부터 수입되어 90년대 한국 소녀들을 열광하게 한 정통 마법소녀물의 공식을 따르는 듯하다가도, 이런 애니메이션에선 절대 다뤄지지 않았던 것들이 <매지컬 고삼즈>에는 줄줄이 등장합니다. 지저분하고 잔인한 것들, 희망차기는커녕 우울하고 어딘가 비틀린 주인공의 심리, 한국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강요하는 능력주의, 입시 스트레스 같은 것들 말입니다. 또 ‘변태’ 같다고 여겨지는 성적 취향을 만족시켜줄 대상으로 어리고 예쁜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건장한 성인 남성이 선택된 것도 요상하죠. 성인 남성 시청자들을 모으겠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신체를 선정적이고 도발적으로 표현”하는, 이른바 “팬서비스”를 숱하게 내보였던 일본 마법소녀 애니메이션들과는 다르게요 (백설희-홍수민, 97쪽).

<매지컬 고삼즈> 3화, 마법 소녀 옷을 입은 학교의 생물 과목 교사 남궁선녀가 왼편의 학생 한여름에게 마법소녀가 되어 학교를 구하라고 외치고 있다.

동시에 <매지컬 고삼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거의 모든 주인공이 대가 없이 사회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마법소녀의 숙명을 부당하다고 느낍니다. 착한 일에 대한 보상과 인정을 요구하는 마법소녀의 욕망은, 무조건적으로 세상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착한 영웅만을 보고 싶어 하는 세상의 기대와 충돌합니다. 이러한 갈등이 작품의 주요 딜레마로 작용하죠.


주인공인 한여름은 고3 수험생이 마법소녀로 활동하다가 대학도 못 가고 사회에서 실패자로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현실적인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seri-비완, 35화).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속에서 줄기차게 외쳐대는 사랑과 평화의 외침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성적표에 비하면 너무나 허황된 것처럼 보입니다. 여름은 “어린 시절 보던 만화 속 마법소녀들처럼 내가 착해빠져서, 내 앞길 생각 않고 사랑과 평화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마음 편할까” 생각하며 자신이 '진정한' 마법소녀가 될 자격은 없다고 느낍니다 (35화). 그렇다고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내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마법의 큐빅을 모아 “모두에게 인정받고 보상받게 해 주세요! 대학 걱정도 필요 없게…”라고 빌면, 판타지 장르의 온갖 재앙이 찾아옵니다 (60화). “마법소녀로서 인정받는다는 건 마법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큰 위기가 닥쳐와야 가능”하다는 이유로요 (60화). 목숨 걸고, 재수할 위험을 감수하고 학교를 지켜냈는데도 아무도 그 노력을 모른다는 것, 몰라야 한다는 것이 여름을 화나게 합니다. 하지만 정작 보상을 요구하면 마법은 다시금 그에게 인정에 걸맞은 노력을 다시 보이라고 명령하는 듯합니다.

<매지컬 고삼즈> 35화, 한여름은 당장 수능이 코앞인데 사랑과 평화를 지켜야 하는 마법소녀로서의 사명을 무겁게 느낀다.

여름이 원치 않게 마법소녀가 된 건 여름의 언니이자 첫 번째 마법소녀였던 한겨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입니다. 여름은 자신이 수능을 망친 언니를 비웃어서 겨울이 자살했다고 생각하지만, 작품이 전개되면서 겨울의 죽음에 대한 내막이 밝혀집니다. 그런데 베일에 쌓여 있던 것은 여느 판타지 장르에서 기대되는 '거대한 흑막'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작고 사소한, 그러나 끊임없이 누적되어온 피로함과 우울의 흔적이지요. 


여름의 언니 겨울은 집에서는 똑똑하고 믿음직한 맏딸로서, 학교에서는 착하고 따뜻한 마음씨에 공부까지 잘하는 모범생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몰래 학교를 위협하는 존재들을 무찌르고 학생들을 보호하는 초대 마법소녀이기도 했죠. 하지만 보답받지 못한 채 이어지는 노고와 희생에 겨울은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고, 여러 비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비행이라는 것은 세상을 뒤집어 버리는 일도 아니고,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도 아니고, 재미를 쫓는 일도 아닙니다. 겨울이 선택하는 비행은 시험 점수를 조작하는 것입니다. 고등학생인 그가 생각하는 ‘보상’의 한계점은 한국의 입시 교육과 능력주의의 너머를 향하지 못했던 것이죠. 학교를 위해 노력한 대가로 원하는 것은 오직 높은 성적, 높은 대학입니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데도 겨울은 입시 제도 바깥을 사유할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편법에 익숙해질수록 얻게 되는 무능”은 결국 수능 날 겨울이를 무너뜨립니다 (138화). 수능 시험지는 학교에 남아있지 않고 바로 교육청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조작할 수 없었던 것이죠. 겨울은 수능에 실패한 것이 자신이 “보답을 바랐기 때문”이라 자책합니다 (138화). 자책의 무게에 짓눌려 ‘죽고 싶다’ 생각하는 순간, 마법소녀의 가장 절실한 마음을 이루어준다는 마법이 그를 학교 건물 아래로 추락시킵니다 (138화).

<매지컬 고삼즈> 138화, 한여름의 언니이자 초대 마법소녀인 한겨울은 자신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바랐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겨울의 죄책감은 어딘가 엇나가 보입니다. '이 지경'은 그가 보상을 바라서 찾아왔다기보단, 편법을 써서 보상받으려 했던 행위가 불러온 결과니까요. 하지만 이상적인 마법 소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시생의 강박과 혼합되어 매우 자학적인 사고로 변질됩니다. 마법소녀의 힘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마법소녀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겨울이 어쩌다 마법소녀가 되었는가는 작품에서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는 어쩌다 보니 마법소녀가 되었고, 그 목적에 충실하게 살려 노력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한국에서 태어나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누군가와 경쟁하고, 성적으로 평가당하고, 밤늦게까지 관심도 없는 분야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들처럼, 어쩌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보다 더 큰 각오와 책임감을 안고 버텨가던 아이는 결국 그 무게를 못 이겨 추락하게 됩니다.


마법소녀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대의만을 좇기를 강요하는 사회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길 강요하는 한국의 입시 지옥의 은유입니다. 마법소녀도, 평범한 수험생들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포기하라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은 마법소녀 겨울과 여름에게 보상받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라고 말하고, 한국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지금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낙오자가 되지 않는다고 경고합니다. 가장 안 좋은 미래를 미리 상상하고 두려워하게 만들어 ‘스스로’ 공부에 목숨을 걸게 만드는 목소리들을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미디어로부터 듣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이룰 수 없는 이상을 멋대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설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거야. 그 아래 짓눌려 죽어가면서" (140화). 작품은 착한 아이에게 주는 칭찬과 성실한 모범생이 되라는 목소리에 당당하게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칭찬이 이끄는 대로 떠밀려 가다 돌아봤을 때 그건 어느새 네 인생이 아니게 될지도 몰라”라고 말합니다 (52화).


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힘겨루기에서 자녀가 이길 수 있게 하는 비장의 한 마디, "내 인생인데 내가 결정할 거야"라는 말도 "'입시'가 끼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정민승, 331쪽). 한국 청소년들은 이미 입시에 실패하면 낙오될 거라는 두려움, 노력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거라는 공포를 내재화한 상태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제한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겨울이 마법소녀의 분수(分數)를 생각하듯, 한국의 청소년들도 자신들에게 다른 길은 없다고 되뇝니다. 한국 사회는 아이들에게 명문대 입학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재앙’을 불러옵니다:

아이들에게 여지가 없어지게 되는 것. 이것은 사회적으로는 일종의 재앙이다. 새로움의 가능성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정민승, 330쪽).

<매지컬 고삼즈>는 개인의 심리,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재앙을 판타지물의 그것으로 재현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에 질문을 던집니다. 보기에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매지컬 고삼즈>는 이러한 면에서 일본의 정통 마법소녀물로부터 분리됩니다.

2022년 출간된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의 표지

백설희, 홍수민 작가는 2022년 출간한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에서 일본 소녀 만화가 부딪혔던 여러 가지 한계에 대해 논합니다. 이들은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세일러 문>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마법소녀물이 TV 바깥의 진짜 소녀들을 가부장제 사회로부터 구원할 수 없었었음에 주목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작품들은 “가부장제를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자본주의를 포함한 현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개인적인 성공, 권력, 자율성에 중점을” 둔 “부드러운 페미니즘”을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죠 (백설희-홍수민, 108-109쪽).

물론 여성주의적 메시지는 널리 퍼질수록 좋지요. 그러나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소비되려면 여성주의의 예쁘지 않고, 매력이 떨어지며, 친근하지 못한 메시지들은 소거되어야 합니다. 인기가 많으려면 모나서는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전 세계의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대히트작 <세일러 문> 시리즈는 여성주의적 메시지에 일면 부응함과 동시에 어디 하나 ‘모난 곳’이 없습니다. <세일러 문>의 내용은 일본의 전통적인 성규범이나 가부장적 규범을 근본적으로 위협하지 않습니다. 비주얼과 내러티브, 여성주의적 메시지 모두가 대중의 눈과 귀에 한없이 긍정적이고 매력적일 뿐입니다. (109)


하지만 <매지컬 고삼즈>가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부정적이고 기괴합니다. 이 작품은 사회의 부조리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습니다. <세일러 문> 시리즈가 “여성됨과 소녀됨의 불편하고 부정적인 이면을 보여 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110쪽), <매지컬 고삼즈>는 대한민국에서 청소년 수험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폭력성과 위험, 우울, 그리고 주체성 박탈의 문제를 조명합니다.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은 재앙입니다. 그런 재앙에 응답하고 질문하고 있기에, <매지컬 고삼즈>는 예쁜 이미지만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매지컬 고삼즈> 79화, 봉사 시간 아니면 착한 일 안 해도 되냐면서 쓰레기를 던진 행인에게 여름이 맞대응하고 있다.

여름은 “뭐야, 그럼 봉사 시간 줄 때만 착한 일 하고, 안 주면 안 한다 그거야? 마법소녀가 인성이 뭐 그따위야?”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착한 일에 보답 같은 거 바라면 안 돼요? 그게 사람 아닌가?!”라고 쏘아붙이고 (seri-비완, 79화), 주위에서 안 좋게 보니 조금 더 모범적으로 지내라는 친구에게 “평소에도 모범을 보이고, 예쁘게 싸우고? 왜 그런 것까지 맞춰 줘야 하는데?”라고 되묻습니다 (103화). 악당과 싸우더라도 반짝이는 눈빛과 매력적이고 우아한 동작으로 싸우던 마법소녀들과 달리, <매지컬 고삼즈>의 마법소녀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과 불화하고 사회가 바라는 순수함과 불화합니다. 그렇게 불화하는 청소년을 보며 독자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 사회가 사실은 어딘가 망가져 있지 않은가 자문하게 됩니다. 왜 예쁘게 싸워야 할까요? 왜 보상을 요구하면 안 될까요? 한국의 청소년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기회는 왜 너무나 자주 좌절될까요? 무한한 성장 가능성, 어쩌면 진짜 마법의 힘보다도 더 비현실적이고 더 찬란한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이 왜 지금도 어딘가에서 죽어 가고 있는 걸까요?

<매지컬 고삼즈> 101화, 여름과 협력하는 마법소녀 임아란. "비현실적인 힘이 손에 있는데도" 청소년들이 끊임없이 희생되는 입시 제도의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자조가 드러난다.


주인공 한여름은 언니인 겨울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껴 마법소녀가 되었지만, 그가 활약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훌륭한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언니를 죽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착한 아이나 훌륭한 마법소녀가 아니라 그렇게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던 평범한 인간을 봤어야 했는데” (140화). 이것이 <매지컬 고삼즈>가 현재 대한민국 입시 경쟁을 숙고하고 내린 결론이자 응답입니다. 모든 것을 단숨에 뒤엎어버릴 능력은 없지만, 성과가 아니라 노력을, 성적이 아닌 사람을 봐야 한다고 느끼는 것.


마지막화에 이르러 여름이는 다시는 마법의 힘을 위해 누군가 희생되지 않도록 마법의 매개물이자 마법소녀로 변신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요술봉인 머리핀을 똥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언어유희가 아니라 진짜 똥으로요: “사랑과 평화의 마법소녀 같은 거 X까라 그래. 그딴 거 필요 없어!! 이 핀은 똥이야, 똥이라고…” (140화).

<매지컬 고삼즈> 140화, 핀은 마법소녀의 간절한 진심을 현실로 이루어주는 능력이 있다. 변신 도구였던 마법의 핀이 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끝까지 병맛 개그를 놓치지 않는 연출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이 장면은 <매지컬 고삼즈>가 일본 마법소녀물이 기존 성역할을 공고히 하는 전통으로부터 완벽하게, 그것도 즐겁게 탈출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매지컬 고삼즈> 속 마법소녀의 모습은 분명 관습적 여성성의 상징들을 체화하고 있습니다. 분홍색, 리본, 프릴로 장식된 짧은 드레스부터, 꾸밈을 위한 도구인 머리핀을 요술봉처럼 사용하는 것 등을 보면 명확하죠. 이들의 변신한 모습은 ‘성인 여성’의 물건으로 여겨진 화장품을 마법의 매개물로 설정함으로써 여성의 꾸밈 노동(코르셋)을 마치 여성 스스로 선택한 힘인 것 마냥 감추었던 일본 마법소녀물의 전통을 답습하는 듯 보였습니다 (백설희-홍수민, 94쪽). 하지만 최종화에서 여름이 마법의 핀을 똥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이러한 전통 역시 똥이 됩니다. 이 장면은 마법의 힘이 은유하고 있던 대상인 한국의 능력주의와 경쟁사회에 대한 폭로와 마법소녀들을 얽매 온 성역할에 대한 고발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마법의 힘을 스스로 포기한 후 여름과 다른 친구들 모두 한국의 현실로 돌아오지만, 그들은 더 이상 그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게 뭐라고 우리는 그렇게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매달렸을까. 이게 대체 뭐라고…” (seri-비완, 141화). 작품 초반에 “진짜로 네 앞길 챙기지 않고도 사랑과 평화에 집중이 돼?”라고 물었던 여름은 (35화) 이제 “다시 또 대학에 매달리는 게 진짜 맞는 건가” 고민하게 되죠 (141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청소년들을 옥죄고 있지만, 여름은 이제 사회를 당연한 것이 아닌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합니다. 대입에 실패하면 모든 게 무너질 거라고 말했던 사회 속에 여전히 발 딛고 있지만, 무너지지 않은 채 서 있습니다. 여름은 한국의 입시제도까지 진짜 똥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상한지 또 얼마나 폭력적인지 누구보다 체감하는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죠. 


그렇게 성장한 어른으로서의 여름은 마법의 힘으로 “세상을 더 좋게 바꿀 수도 있을 텐데”하며 혀를 차던 기성세대와 구별됩니다: “뭐래. 세상은 다 같이 힘을 모아서 바꾸는 거죠. 마법소녀한테 맡길 게 아니라. 힘이 되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언제까지 그런 거에 기댈 셈이에요?” (140화) 여름의 일침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는 책임을 아이들에게 미루고 있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꿈'이라는 텅 빈 기표는 비청소년인 타자의 욕망만을 비출 뿐이며, 이를 '현실적이지 않게'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청소년의 모습 또한 기성세대의 일방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양혜림, 92쪽). 이에 <매지컬 고삼즈>는 "청소년을 계도가 필요한 미숙한 존재이자 사회의 불의를 타파할 미지의 힘을 지닌 초인으로 보는 기존의 성장 서사의 모순은 청소년을 이중으로 소외시켜 왔"음을 고발합니다 (92쪽). 청소년들에게는 말과 그림으로 힘을 실어 주고, 어른들에게는 책임감을 안겨 줍니다. 웹툰은 어딘가 잘못된 사회로부터 도망치지 말라는 용기와 그런 사회를 바꾸는 노력에 힘이 되어 주라는 명령으로 기능합니다.


요상한 마법소녀물 웹툰인 <매지컬 고삼즈>는,  사실 정말 요상한 것은 사실 청소년들에게 입시 제도 바깥을 경험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한국 사회라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 사회에 당당히 맞서 자신들이 응당 받아야 할 인정과 사랑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라 말합니다. <매지컬 고삼즈>는 마법소녀의 화려함을 앞세워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꿈과 희망이 없는 한국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작가들의 일이라면,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에 응답하는 것은 독자의 일일 것입니다. 보기 좋은 영웅, 멋진 마법소녀, 훌륭한 모범생이 아니라, 그러한 기대가 짓눌러온 사람을 보는 일. 초라하지만 그것이 독자가 여전히 쥐고 있는 마법 같은 힘, 서로에게 보태 줄 수 있는 힘일 것입니다.


https://series.naver.com/comic/detail.series?productNo=2177349&isWebtoonAgreePopUp=true


참고문헌

백설희, 홍수민.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소녀가 소비하는 문화, 그 알려지지 않은 이면 이해하기> 들녘, 2022.

양혜림. <웹툰의 서사 공간>. 만화웹툰이론총서, 커뮤니케이션북스, 2019.

정민승. ”입시는 어떻게 괴물을 만드는가” <교육비평> 제40호, 2017, 326-343쪽.

Seri, 비완. <매지컬 고삼즈>. 네이버웹툰, 2013-2016. 네이버시리즈.


- 작품에 대해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seri 작가님과 비완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매지컬 고삼즈>는 현재 네이버 웹툰 앱에서 24시간마다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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