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布施)
#20240928 #동물의숲 #보시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은 내가 무인도에 가서 살면서 섬을 꾸미고 섬의 주민들과 친목을 다지는 게임이다. 친밀도는 주민들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아이템을 주면서 높일 수 있는데, 그러면 주민들은 답례로 옷이나 아이템을 준다. 친밀도가 일정 수준이 되면 주민은 자신의 사진을 선물로 준다고 한다.
오늘은 평소 주던 (남아도는) ‘야자열매’를 주지 않고 ‘사과’를 줘 보았다. 야자열매보다 희귀도가 높은 사과를 줘서 그런지, 주민들은 평소에 주지 않던 아이템을 주었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소문을 들은 것인지, 주민 A가 내가 방금 받은 아이템에 눈독을 들였다. 고민이 있는 척을 하기에 말을 걸었더니 아이템을 달라고 했다. 이것도 부탁이니까 들어주면 친밀도가 올라갈 참이었다.
근데 나는 괜한 욕심이 났다. ‘내가 한 번도 안 가져봤던 아이템인데, 이걸 달라고 해? 어림없지!’ 나는 A의 요청을 거절했다. A는 네가 힘들게 얻었는데 미안하다며 자기가 구해보겠다고 하고는 가버렸다. A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작 그 A는 다음에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근하게 말을 걸어올 걸 알면서도. (그러고 보면 인공지능은 같은 걸 수천 번 물어봐도 짜증 하나 안 내고 잘 대답해 주는데. 아상(我相)이 없어서 가능한 일인가?)
A는 가고 아이템은 남았다. 근데 나는 안다. 이 아이템은 어디엔가 유용하게 쓰이기보다는 그냥 내 아이템 창고에 처박힐 것을. 한순간의 욕심 때문에 쓰지도 않을 아이템을 쌓아두기만 했다는 것을. 심지어 이건 한낱 데이터이고 현실에는 하나도 쓸모가 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가상세계에도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데, 현실에서는 얼마나 욕심을 부리고 있을지?
방송세트장이 다 허구이고 결국 다 떠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듯, 이 세상도 계속해서 변하고 어느 것 하나 영원하지 못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그러니 변할 것들에 욕심부리지 말고, 마음 닦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