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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an 19. 2022

2. 경마장 옆 분식집에 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20220114 #기질 #습(習)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면서 샤워를 했다. 문득 떠오른 것이 분식이었고, 순대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밑에 롯데마트 안에 분식집이 있지만 가기에는 너무 멀고, 집 가까이에 경마장(장외발매소)이 있는데 그 옆에 있는 작은 분식집이 있는 게 생각나서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생경한 경험이었다. 금요일은 경마장이 운영하는 날이고, 아침 10시에 문을 여는가 보다. 10시가 조금 안 되어서 분식집에 들어가니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바람을 피하고자 오뎅 하나씩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안경이 뿌예져서 문가에 멍하니 서 있었더니, 앞에 있던 아저씨가 귀찮다는 말투로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죄송하다고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에는 주방이 있었고, 그 앞에 좁은 탁자가 두 줄로 늘어서 있었으며, 탁자를 따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TV에서는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을 보여주는 그래프가 나오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탁자에 앉아 라면을 먹으며 그 방송을 보고 있었다. 메뉴를 보니 순대도 떡볶이도 없었다. 국수와 밥 종류를 팔기에 잔치국수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저 츄리닝 차림에 가방을 메고 갔을 뿐이지만, 이곳에 있기에는 좀 깔끔하지 않나 하는 이질감마저 들었다. 


 아마 경마장에 가려는 여러 사람들이 들락거렸지만, 대체로 허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겉옷이 허름해서였을까? 이리저리 삐친 머리나, 수염, 짙은 화장 때문이었을까? 어떤 사람은 바지 뒷주머니에 경마 책을 반으로 접어 꽂은 채로 들어오더니,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고는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열심히 칠했다. 어떤 아주머니는 주인아주머니와 아는 사이인지 들어올 때부터 소란스럽더니, 라면을 시키고는 맥주 2병을 깠다. (코로나 검사로) 코를 너무 심하게 찔러서 코가 다 헌 것 같아 이비인후과를 가봐야겠다거나, 모 병원 환자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시답잖은 얘기들을 가게 안의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대답하는 이가 없어도 떠드는 모습이, 왠지 세상의 누구라도 자신의 말을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느껴져서 안타깝기도 했다. 


 자리가 없어 내가 앉은 탁자 맞은편에 어떤 아저씨가 앉으셨다. 그분도 허름한 차림이었지만 국수와 꼬마김밥을 시키셨나 보다. 나와 그분의 국수가 나왔고 젓가락을 집는데, 내 것만 챙기기가 뭣해서 맞은편 아저씨께도 슬쩍 드렸다. 젓가락을 드렸으니, 숟가락도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 숟가락도 드렸다. 아까의 그 아주머니가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걸 들으며 조용히 국수를 먹고 있는데, 아저씨가 자기가 먹던 꼬마김밥 그릇을 나한테 슬쩍 미셨다. 4줄 중에서 2줄 드시고 2줄을 나에게 주신 거였다. 눈이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시기에 “아, 고맙습니다” 하고 받았다. 슬쩍 가격을 보았는데, 3,000원이나 했다. 과연 내가 한 행동이 1,500원이나 되는 거였을까? 마음을 돈으로 따지면 안 되지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챙겨준 게 뭐 그리 큰 행동이라고... 

과연 김밥을 받을 만한 행동이었나?


 아저씨는 나에게서 무엇을 보셨던 걸까? 어쩌면 나만 한 아들이, 조카가 있고 그들이 떠올라서 그러셨던 걸까? 어쩌다가 저분은 경마장에 오셨을까? 아니, 어쩌면 경마장에 온 게 아니라, 나처럼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렀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수저를 집어주었다는 것 때문에, 그 마음이 고마워서 김밥을 주신 건지도 모른다. 근데 내 생각은 흘러 흘러 경마장에 가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경마장에 재미로 갈 수도 있지만, 주변을 지나다니면서 본 그들은 대체로 깨끗해 보이지 않았고, 허름한 옷차림에, 꾀죄죄하였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거기까지 흘러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한탕 잡기를 바라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환자(특히 인격장애)를 보다가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때면, 그러지 않기 위해서 환자의 ‘기질’과 ‘환경’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면 좀 나을 때가 있었다.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성격은 한 개체가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이고, ‘그 사람’이 ‘주어진 환경’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니까. 도박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 사람이 살다가 어쩌다 경험한 단 한 번의 단맛이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사람은 그 정도로 도파민의 분출이 간절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며칠 전 J와 환자 얘기를 하던 중에 “세상에 못난 사람이 참 많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예전에 모 교수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니 교수님께서는 ‘너는 얼마나 잘났냐’고 하셨는데, 맞는 말씀이다. 나는 뭐 얼마나 잘났다고? 사람들 단면적으로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내 기준에서 판단하면 안 되는데.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있겠거니 하고 생각을 그만두었다. 




 한 사람은 타고난 기질(Temperament)을 갖고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에 맞는 성격을 만들어가는데,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타고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부모와 비슷한 자식이 태어나는 걸 보면 유전 같기도 한데, 때로는 ‘내 속에서 어떻게 저런 게 나왔나?’ 싶은 자식이 태어나기도 하니까. 마냥 그렇게만 설명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까?


 정신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질’의 정의는 “물리적 자극에 대한 조건화된 행동 반응의 조절에 있어 신체의 편향”을 말한다.* 불교의 ()이 이런 게 아닐까? (습이 신체적인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이게 함장식(含藏識)의 영역인 걸까? 그 사람의 영혼이 기저에 갖고 있던 부분이라면 설명이 될까? 그렇다면 그 존재는 특별히 바뀌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이전의 삶에서도 그런 기질을 갖고 있었고, 이후의 삶에서도 그런 기질을 갖고 사는 걸까? 부모와 비슷한 성격의 자식이 태어나는 거나 원수 같은 자식이 태어나는 것도, 영혼의 세계는 유유상종이니까 비슷한 영혼이 자식으로 오거나, 아니면 풀어야 할 인연이 있어서 그런 걸까?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받아들이는 것. 모 교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게 있다. 

환자는 항상 옳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여러 감정이 들 수 있지만, 어쨌거나 환자가 하는 말은 항상 옳다는 것. 그래. 환자는 옳다.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내 욕심이지. 전생이 다 보여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더라도. 지금 왜 그러는지 알더라도, 이후에 어떻게 하는 게 더 나을지가 보이더라도, 그 사람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 탓할 수 없는걸. 바뀌려면 스스로 마음을 내는 수밖에 없고 타인은 그저 도와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의 자비(慈悲), 긍휼(矜恤). 중생을 안타깝게 여기실 수밖에 없는 게 아닐지. 



* 「Kaplan and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Behavioral sciences/Clinical psychiatry」 11th 760p, “Temperament refers to the body's biases in the modulation of conditioned behavioral responses to prescriptive physical stimu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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