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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an 22. 2024

엄마는 내 새끼 밥 먹는 게 중대사인가 보다

아침엔 챙겨야 할 게 많다.


(주로 햄버거지만) 남편 도시락 두 개, 과일 등 가방 싸기와 요즘은 방학이라 숙제는 없지만 아들 학교 가방에 태권도 띠와 도복, 물통, 수저&젓가락을 챙겨야 한다.

준비물이 챙겨지면 남편과 같이 먹을 아침을 차리고, 아들 깨워서 쾌변 요구르트 (억지로) 먹이고, 세수 (억지로) 시키고 목도리, 장갑, 모자를 씌워서 나간다.


특히 월요일에는 정신도 없고, 주말새 풀어지기도 해서 등굣길을 걸으면서 내가 챙길 거 다 챙겼는지 한 번 복기해 보는 편이다.

집에서 나와 걸은 지 5분쯤 됐을까. 뭔가 계속 찝찝하다.


‘다 챙긴 거 맞나...?’


왠지 모를 불안함에 아차하고 어젯밤 나의 만행(?)이 떠오른다. 아이 수저통에 젓가락만 넣고 수저를 깜빡하고 가방에 넣은 것이다.

젓가락질이 서툰 아이는 일반 젓가락 대신에 손가락을 끼워 쓰는 젓가락을 따로 챙겨가는데 와중 안 넣은 게 불현듯 생각나서 걸음을 멈추고 아이 가방에 수저통을 열어보니 역시나 수저가 없다.


“이준아 숟가락 없이 밥 먹을 수 있어?”

“아니, 못 먹지. 젓가락 만으로는 잘 먹을 수가 없어.”하고 말하는 아이 대답에 마음이 급해진다.


안 그래도 편식도 심해 먹는 것도 몇 가지 없어서, 맘에 드는 국이 나오면 밥을 말아서 겨우 먹는 아이기 때문이다.

방학임에도 매일같이 오전에 돌봄 교실에 보내는 것도 마음이 안 좋은데 밥까지 제대로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절망스러웠다.


어쩌지, 고민하다. 일회용 수저를 떠올렸다.

그리곤 작은 편의점에 들렀다. 규모가 너무 작아서 없을려나 한 걱정을 하며 들어선 편의점. 아이는 타는 내 속도 모르고 “사고 싶은 젤리 사도 되냐”며 신났다.


아이는 젤리 코너로, 나는 일회용품 코너로 바로 돌진했다.

내 아이 밥을 먹게해준(?) 하나 남은 일회용 숟가락



열개 들이 일회용 숟가락이 딱 한 개 남았다.


이게 뭐라고 아침부터 너무 감사했다.

오늘따라 너무 추웠고 여기에 마저 없으면 수저 구할 곳은 전혀 없기에 다른 방도를 생각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 수저통에 일회용 숟가락을 하나 넣어주며,

”오늘만 이걸로 먹을 수 있지? 내일은 엄마가 제대로 챙겨줄게 미안. “이라고 말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누군가 보면 유난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아주 아기 때는 사실 먹는 것이 곧 생존과 직결된다고 여겼기에 모유를 남기고 이유식을 남기는 것에 굉장히 민감했다.


8세가 된 지금도 끼니를 잘 챙겼나? 하는 게 어설픈 엄마에게도 최대 화두다.

전날 급식표를 미리보고 내일은 아이가 이거 이거랑 먹겠구나 혹은 먹을게 하나도 없겠구나 하는 판단이 든다.


급식에 아이가 좋아하는 미역국이라도 나오면, 마음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아침부터 “오늘 이준이가 좋아하는 미역국 나온대. 진짜 잘됐지?”라고 말하면,


“아싸 미역국이랑 밥이랑 먹어야지~”하고 힘차게 등교한다.

나에겐, 또 내 아이에겐 “서로 오늘도 파이팅”하는 것의 의미와도 같다.


내 새끼의 밥이 최대 화두인 엄마.

열시가 넘어 집에 들어와보니 나의 엄마도 소불고기를 한 냄비 해두었다.


물론 다이어트(?)를 핑계로 먹지 못했지만 내일 아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며 하루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내 새끼 먹이느라 고생한 전국의 어머님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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