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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Oct 20. 2022

왜 밤고구마 좋아한다고 말을 못 해

시어머니에겐 말할 수 없는 나의 고구마 취향

시어머니로부터 카톡이 도착했다. 지난주 시댁으로 보냈던 바지락과 맛조개를 맛있게 드셨다는 내용과 더불어 고구마를 집으로 보냈다는 메시지.

시어머니의 카톡 메시지




참고로 우리 시댁은 서울이다. 그럼에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 못지않게 늘 온갖 귀한 식재료를 공수해서 챙겨주신다. 특히 늦가을이면 늘 고구마를 10kg씩이나 택배로 보내주신다. 이번에도 역시 도착한 고구마. 


참고로 나는 고구마를 좋아하지만 '호박 고구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목이 막힐듯한 퍽퍽한 밤 고구마를 좋아하는 취향이다. 한 철만 나온다는 걸 알지만 일 년 내내 밤 고구마만 먹고 싶을 정도로 그 식감과 맛을 좋아한다. 반면 뭔가 축축하고 물컹한 느낌의 호박 고구마는 있어도 잘 먹지 않는다. 


그러나 매년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건 '호박 고구마'다. 

어르신들이 드시기엔 수분감이 있고 촉촉한 호박 고구마가 더 좋은 고구마로 느껴질 것이고 그걸 특별히 골라서 보내주신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워낙 고기도 입에서 녹듯 부드러운 것보다 질긴 걸 좋아하고, 채소마저 딱딱하고 질긴 걸 좋아하는 특이 체질(?)이긴 하다. 




고구마 택배가 도착한 날, 열어보고 친정 엄마가 말했다.


"은지 너는 밤 고구마 좋아하잖아."

"응 맞아."

"근데 호박 고구마네? 너는 호박 말고 밤 고구마 좋아한다고 얘기하지 그랬어."

"뭘 그런 걸 굳이..."


내 대답에 엄마는 오히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정엄마는 이제 내 취향을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난 30여 년 간 내가 지나치게 내 취향에 대해 강력 어필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선 싫어해.'

'나는 물컹물컹한 나물 싫어.'

'나는 사과 싫어, 배 싫어.'

'나는 샐러리 좋아해.'

'나는 신거 좋아해.'


등등. 지독하게 나의 TMI에 대해 친정엄마에게 고집스럽게 어필해왔고 엄마는 이것들을 늘 새로운 정보를 듣는 것처럼 흥미롭게 들어줬다. 심지어 "내 딸 아니랄까봐 나랑 입맛이 똑같네." 하며 은근히 뿌듯해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그런 엄마 눈에는 "저는 호박 고구마 말고 밤 고구마 좋아해요."라는 말 한마디도 못하는 내가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무척 평등하고 자애로운 시어머니인데도 이상하게 내 취향에 대해선 말이 잘 안 떨어진다. 어쩌다 내가 옥수수와 밤 송편을 좋아한다는 말을 한 이후로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 냉동실에 넘치도록 챙겨주시는 분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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