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불고기가 하루 아침에 맛이 없어졌다.
나는 비건을 지향한다. 그래서 집에서 동그란 나무 그릇에 내가 직접 만든 간단한 반찬과 채소들로 밥을 차려 먹었다. 제로 웨이스트, 즉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도 관심이 많아서 배달시켜 먹을 때는 다회용기에 주는 중국집과 종이상자에 주는 피자를 주로 시켜먹곤 했었다.
그리고 제로웨이스트를 내 생활 가까이에 들여오기 위해, 장날에 장바구니와 용기를 들고 시장에 갔다. 모든 식재료를 쓰레기없이 샀다. 장날에 장봐 온 것들로 대부분 요리해먹고 가끔 공산품을 사 먹곤 했었다.
하지만 임신 후 비건과 제로 웨이스트는 잠시 접어둬야 했다. 나의 신념을 지키기 전에 일단 입덧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게 더 중요했다. 입덧 때문에 내가 입맛에 맞는 음식이 아니면 먹기가 힘들었다.
하루는 마라탕을 시켰다. 아주 맛있게 먹었다. 마라탕 특유의 얼얼한 국물과 흰 목이버섯, 건두부는 참 맛있다. 나는 목이버섯과 건두부의 식감을 정말 좋아한다. 나는 밥 냄새 맡는 게 힘들어서 밥은 조금만 먹고 마라탕 위주로 먹었다.
다음날,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마라탕이 다시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마라탕을 냄비에 옮겨놨었다. 냄비 뚜껑을 여는 순간 내 속에서 토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되는데, 어떡하나.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남편이 남은 마라탕을 다 먹었고 나는 남편이 마라탕을 먹을 동안은 다른 방에서 코를 막고 있었다.
불고기도 마라탕이랑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가끔 동네 마트에서 불고기를 사서 집에서 반찬으로 먹곤 한다. 최근에도 불고기를 사 와서 먹었다. 남편이 불고기를 먹은 다음날, 나는 입덧 때문에 몸을 움직여 요리할 힘이 없었고 배달을 시켜먹자니 마라탕처럼 하룻밤 사이에 입맛이 변할까 봐 주저됐다. 그래서 남편이 산 불고기를 반찬삼아 밥을 먹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입덧 중에는 비건을 지키기 힘들 것 같다. '딱 입덧할 때 동안만!'이라는 마음으로 불고기를 먹었다. 일단은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불고기를 다 비우는 날동안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 얼마 후, 남편은 같은 불고기를 사 왔다. 저번에는 잘 먹었는데 나는 갑자기 불고기 냄새도 맡기 힘들어졌다. 남편이 불고기를 먹을 때 나는 다른 방에 들어가서 코를 막고 있어야 했다.
왜 입맛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일까? 입덧이란 원래 이런 것인가? 입덧을 잘 버티게 해 줄 만한 명확한 음식이 없다는 게 참 답답하다. 그런 음식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나마 편할 텐데 말이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묵사발, 메밀국수, 밀면도 한번 먹으니 더 이상 먹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맛인 시리얼, 컵라면, 주스 등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중이다.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임신 사실을 알리던 날, 엄마랑 외할머니는 임신했을 때 입덧 없이 잘 지나갔다고 해서 나도 당연히 입덧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에게 이렇게나 입덧이 심하게 찾아올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기쁘고 신기한 마음은 잠시 뿐, 나는 이렇게 입덧 지옥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자꾸만 토가 올라와서 입을 막다가 토레타를 마시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배달을 시켜 먹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은데, 마라탕처럼 하룻밤 사이에 입맛이 변하면 어쩌나 싶다. 낮에 동네 친구를 집에 불러서 같이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친구랑 먹으면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으니 남길 확률이 낮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입덧만 끝나면 소원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