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 이슈나 기술 콘텐츠를 쓰다 보면 영문 자료를 참고할 때가 많다. 여기서 영문 자료란 보고서, 논문, 외신을 뜻한다. 전자는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당연히 영문 자료를 볼 수밖에 없다. 국내에도 한글 외신 기사가 많지만 연합뉴스에서 먼저 쓴 걸 재가공한 경우가 많다. 연합뉴스가 취사선택한 사실 관계와 해석을 바탕으로 쓰기 쉽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기자는 여러 자료를 검토해서 쓰기도 한다. 특파원이 있는 매체는 그 기자가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기사를 쓰고.
그러나 이것만 보면 시각이 제한될 수 있다. 연합뉴스든, 특파원이 있는 매체든 어쨌든 거기서 게이트 키핑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현지 취재와 여러 자료를 토대로 글을 썼지만 말이다. 영문 외신 기사를 직접 봐야 하는 이유다. 물론 그것도 완벽하지는 않다. 그 또한 해당 매체 게이트 키핑의 결과물이니 말이다. 그 한계를 인정하며 최대한 여러 보도를 보고 국내서 보도되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사실이나 맥락, 해석을 참고해야 한다. 외신에서 어떤 문헌을 인용했는데 본문에 그 링크가 있다면 눌러서 그 내용을 직접 확인하기도 하고.
예를 들어 구글이 핏빗을 인수한다고 밝혔을 때 국내 매체 가운데에서는 '앰비언트 컴퓨팅 전략'을 언급한 곳이 많지 않았다.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초반에는 많지 않았다. 외신에서는 앰비언트 컴퓨터 전략과의 관련성을 언급한 매체가 여럿 있었다. 난 그게 사소한 내용은 아니라고 봤다. 구글은 인공지능 비서, 스마트 스피커, 사물인터넷, 히어러블 제품 등을 통해 보이지 않게 우리 데이터를 모으며 지배하고 있으니까. 실제 구글이 핏빗을 인수할 때 많이 제기된 우려가 프라이버시 문제였고. 신체 데이터까지 웨어러블로 무의식 중 수집할 수 있으니. 여기서 실마리를 얻어 구글의 앰비언트 전략과 관련 어록 등을 더 찾아봤다.
그러나 구글 상황만 쓸 수 없고 핏빗에 대해서도 써야 한다. 핏빗 CEO 겸 공동창업자가 한인이라는 점에서도 그 인수합병은 주목받았다. 축하 인사도 많았다. 피인수자인 핏빗의 도약에 그 M&A가 도움되길 바라되, 핏빗의 재무상황을 더 들여다봐야 했다. 그들의 사업현황과 매출 구조, 잘 되는 지역 등. 무료 기사가 아닌 유료 구독 서비스 기사이기 때문에 다른 매체서 주요하게 다루지 않았지만 살펴보면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사 마감하는 날 새벽, 그해 3분기 핏빗 실적이 나왔다. 2분기 실적을 토대로 우선 기사를 쓰고 있었다. 3분기에 큰 변화가 있을까 싶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좀 많이 달랐다. 앞서 쓴 실적 내용을 거의 들어냈다. 해외 기업이니 IR 자료는 영어로 돼 있다. 그래도 IR은 그래프가 크고 활자로 설명이 들어가 있어서 보기 낫다. 보도자료, 어닝 콜 원고는 더 길지만. 그걸 같이 보면 그들의 현실 인식과 앞으로 방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된다. 핏빗이 아니더라도 페이스북, 구글, 이베이 등 실적이나 사업 기사를 쓸 때 어닝 콜 원고는 꼭 보고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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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번역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본론이 늦어지고 있다. 근데 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해서. 후자인 기술 콘텐츠는 한글 자료를 봐도 좋다. 그러나 여기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 각 자료마다 보면 궁금증이 더 생기고 아쉬운 점이 있을 때도 있다. 거기에 모든 내용이 있지 않으니까. 개념이나 역사를 잡기는 좋다. 이를 보완하고 싶은데 한글 자료가 더 안 보이면 영문 자료를 같이 봐야 한다. 또 우리나라보다 기술이 앞선 나라 사례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려면 영문 자료를 봐야 한다. 그게 보고서든, 외신이든.
어떤 한글 자료는 나온 지 몇 년 됐거나 업데이트되지 않았을 수 있다. 이에 최신 현황을 살펴보려면 영문자료도 찾아봐야 한다. 특히 기업 사례에 대한 내용이 그렇다. 딥페이크, 양자컴퓨터, 감정 인식, 플라잉 카를 다룬 기사는 다른 기술보다 한글 자료를 좀 더 참고했다. 그러나 활용사례, 한계, 전망은 주로 영문 자료를 봤다. 이밖에 구글의 양자 우위 달성처럼 해외에서 먼저 화제가 돼 국내서도 큰 뉴스가 된 기술 현안이 있다. 이를 글로 쓰려면 역시 영문자료를 안 볼 수 없다.
현재는 철수했지만 알파벳 계열사인 사이드 워크 랩스의 토론토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 사업 자료도 그렇고. 테크니컬 라이터로 기술 콘텐츠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내가 기술을 설명해야 하는 기업 사례를 중점적으로 쓰면 되기 때문에 기자 시절 수준으로 노가다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렵긴 하다. 글의 성격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고민도, 신경 쓰는 지점도 달라졌으니까.
IT, 기술 콘텐츠는 영문 자료를 볼 수밖에 없고 그게 당연하다. 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읽고,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전문 번역가 수준으로 모든 콘텐츠 내용을 일일이 다 번역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용을 보되, 그중 핵심 내용 또는 내 기사나 글에 참고하면 좋은 내용을 건져서 번역하면 된다. 물론 직역과 의역의 딜레마가 있다. 직역하면 너무 거칠고, 의역하면 너무 비튼 것 같고. 윤문해야 하는데 전문 번역가가 아니면 그것도 섣부른 번역이 될 수 있다. 의미를 보존하면서 문장을 자연스럽게 번역해야 한다. 난 그렇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의역했지만 그게 어려운 건 직역이라도 의미를 직접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 좋은 방법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얼마 전 김고명 번역가님의 저서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를 읽었다. 거기서 알게 된 작가님의 번역 방식은 이렇다. 스크리브너라는 프로그램을 쓰고, 적절히 휴식 시간을 주며 문장을 번역하신다고 했다. 나도 이런 소프트웨어를 쓰면 좋았을 텐데 원시적으로 일했다. 생산성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익숙지 않고, 워드에 번역했다. 메모장을 쓸 때도 있었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재부팅되면 메모장이 지워질 수 있으니 워드가 나았다.
어떨 때는 손으로 메모하면서 번역하기도 했다. 기자 초년생 시절 말고 IT 기사를 쓰던 초반에 그랬다. 난 손으로 글씨를 써야 내용이 이해된다. 그러나 양적 압박이 컸기 때문에 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그 방법을 안 쓴 건 아니다. 컴퓨터가 고장 나면 손으로 번역해야 했다. 이럴 때는 환기하는 기분이 들어 괜찮다. 문장이 어렵지 않으면 더욱 금상첨화고. 생각해보니 이때는 IT 이슈도, 기술 콘텐츠도 아닌 스타트업 콘텐츠를 쓸 때 그랬던 것 같다. 하필 맥주 스타트업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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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번역 장치에 대한 내용이고. 번역 방식이 문제다. 솔직히 말하면 '딱 이거다'하는 명확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여러 가지 방식을 활용했는데 그때그때 상황과 필요에 맞춰서 돌아가면서 썼다. 첫 번째, 영문 자료를 읽고 참고할만한 내용을 추려 번역한다. 모든 자료 내용이 다 쓸모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것만 고르는 거다. 내용을 읽으면서 필요한 부분을 타이핑 치는 방식이다. 전체 내용을 다 읽고 나서 추리기에는 시간이 낭비될 수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그때그때 집어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모르는 단어가 나왔는데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면 일단 먼저 해석했다. 그러나 그 단어가 의미를 이해하는 핵심 단어라면 사전을 꼭 찾아봤다. 아는 단어도 업계에서 쓸 때 의미가 다른 경우도 있으니 그럴 때도 사전을 참고했고.
두 번째, 영문 자료를 읽음과 동시에 타이핑 치면서 번역한다. 이 경우 대부분 내용이 참고하기에 좋은 내용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내용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문자를 바로 화면에 때려박으며 번역하는 방식이다. 역시나 내용을 다 읽고 나서 '아, 이게 괜찮았어' 하고 돌아가서 메모하기엔 시간이 아깝다. 게다가 첫 번째 방법처럼 필요한 내용만 떼어낼 경우, '왜 이런 내용이 나왔지?' 맥락을 놓칠 수 있다. 이런 내용이 나온 배경을 참고하기 위해서 전문을 같이 번역했다. 아주 불필요한 내용은 안 넣기도 하고. 참고로 제프 베조스의 블루 오리진 기조연설, 애플 서비스 이벤트, 구글 I/O 기조연설 때도 유튜브 영문 자막을 틀어놓고 이렇게 번역했다.
세 번째, 앞서 언급했듯 손으로 쓰면서 번역한다. 처음에 자료 압박이 엄청날 줄 모르고,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학창 시절 필기하듯 번역했다. 에버노트처럼 손수 필기한 걸 사진 찍어 올려서 화면에 활자도 동기화할 수 있는 거면 모르겠지만 그런 걸 쓰지 않았다. 이때 불편한 건 따로 포스트잍을 붙이지 않으면 내가 어디에 무슨 내용을 썼는지 모를 수 있다는 거다. 손수 쓰면서 번역하는 건 전자파 때문에 피곤하거나 환기하고 싶을 때 가끔 하는 게 나은 것 같다. 아니면 다른 일정으로 어디 가 있는데 자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 싶을 때 수첩에다 번역하거나. 컴퓨터가 맛이 가면 불가피하게 쓸 수밖에 없는 방식이기도 하고.
네 번째, 네이버 파파고나 플리토 같은 번역 서비스를 활용한다. 기업공개 서류나 스마트시티 사업설명서처럼 100쪽이 넘거나 많게는 1000쪽 가까이 되는 긴 자료를 봐야 할 때가 있다. 전문 번역가가 아니면서 이걸 빠른 시간 안에 번역하는 건 무리다. 우버 기업공개 서류 분석 기사를 쓸 때, 쿼츠에서는 AI 알고리즘도 활용했다고 들었다. 난 그런 게 없는데 자료는 빨리 검토해야 하고. 이럴 때는 1~2번 방법을 함께 활용하면서 번역기도 돌려봤다. 그러나 번역기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옮겨선 안된다. 성능이 좋은 편이지만 틀릴 때도 있으니까. 번역 내용이 나오면 영문자료 내용과 함께 검토하며 이 번역이 정확한지 확인한다. 틀린 게 있으면 고치고.
그러고 나서도 이 내용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자연스러운 문장도 있지만 맥락에 맞지 않는 단어를 쓴 문장도 있을 수 있고. 내 문체도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다듬어야 한다. 역시 의미는 훼손되지 말아야 하고. 그런데 이렇게 교차검증을 거치고 나면 결국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있다. 이렇게 해도 글을 쓰고 나서 검수와 퇴고를 거칠 때는 번역의 정확도를 판단하기 위해 영문 내용을 다시 본다. 늘 내가 한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고 완벽하면 좋겠지만. 만일의 실수에 대비해야 하니까. 영상으로 본 기조연설 내용도 다시 영상을 틀고, 기사에 인용한 자막을 보면서 정확도를 다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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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편 쓸 때 이렇게 참고한 자료는 보고서, 논문, 외신 등을 포함해 30~50개쯤 됐다. 그 이상 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보수적 수준으로 매기면 그 정도였다. 현실적으로 그 자료를 다 볼 수 있냐면. 일단 자료를 봐야 내용의 옥석을 가릴 수 있고, 내가 참고할만한 자료는 뭐고, 아닌 건 뭔지 분류할 수 있다. 근데 자료를 조사하는 시간이 너무 긴 것도 좋지 않다. 전 직장 대표는 하루는 조사, 하루는 글쓰기 이런 방식을 제안했다. 내가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서겠지만 난 그게 어려웠다. 내가 뭘 쓸지 정하기 위해서도 조사를 하는 시간도 있고. 영어가 편하지 않은 데다 다른 무료 콘텐츠와 차별화되는 내용을 써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하루가 빠듯했다.
사실 내 일하기 방식은 성공적이지 않고 비효율적이었다. '나처럼 해봐요' 이런 말을 감히 할 수 없다. 기깔나게 생산성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똑똑하기보다 무식하게 일하는 유형이었다. 내게 적합한 방식으로 조사하고 일하다 보니 그게 익숙해서 그게 힘들어도 그걸 더 편하게 느끼는 것도 있고. 장단점이 있다. 기술 콘텐츠를 쓸 때도 이 방식을 병용하긴 하는데 유료 구독 서비스에서 기사를 쓸 때만큼 양과 강도로 자료를 조사하고 번역하지 않는다. 적당히 한다. 내가 쓰는 건 국내 기업의 기술을 설명하는 콘텐츠다. 영문 자료를 기자 시절만큼 방대하게 보는 것도 아니고, 그게 들어갈 공간도 제한적이다. 그 회사 기술에 대해 써야 하고, 그게 글에서 주목받아야 한다. 그걸 설명하기 위한 징검다리, 필요성을 제시하는 미끼로 영문 자료를 활용한다. 그러나 영문 자료에서 찾은 내용이 콘텐츠의 주요 내용을 차지하던 과거와 다르다.
당분간 예전 패턴과 비슷하게 조사하고 번역하고 글을 써야 한다. 앞으로 해당 기업 기술에 한정하지 않고 그쪽 기술 전반과 관련된 콘텐츠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좀 더 힘든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도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경험할 것을 기대하고 싶다. 아무튼 좀 더 부담을 다시 느끼는 요즘이다. 범위가 더 넓기도 하고, 내게 주제 선정의 주도권이 생긴 만큼 주제를 잘 정해야 하고. 하나마나한 거 쓰기는 싫고. 가성비 떨어지게 일하면 안 되겠지만 대충 때우는 건 더 싫고. 내 이름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의 시선도 부담스러운데 사실 날 납득시키는 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