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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림 심했던 에든버러 여행 1일차

여행의 끝이 보인다

by 딱정벌레
칼튼 힐에서 내려다본 에든버러 풍경. 사진=딱정벌레

에든버러 이야기를 한다는 건 이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영국 여행 7일차되는 날 맨체스터에서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 에든버러에 도착했다. 옥스퍼드에서 리버풀 갈 때처럼 4시간 남짓 걸렸다. 돌아보면 그 여행에서 좋았던 건 기차 여행을 실컷 했다는 것. 기차를 오래 타면 엉덩이도 아프고 지겹다. 기차뿐만 아니라 버스도 그렇지만. 이제 무궁화호는 도무지 못 타겠다. 그래도 멀리 여행 와서 타는 기차는 좋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니 엉덩이도 덜 아프고. 환승역에서 낯선 지역을 잠깐 훑어보는 것도. 오랜 시간 기차를 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창밖 풍경을 카메라에 마음껏 담았다.

에든버러로 향한다는 건 잉글랜드 여행을 마무리했다는 뜻도 있다. 여긴 스코틀랜드니까. 유나이티드 킹덤 오브 그레이트 브리튼 일원으로 들어가 있지만 다른 점이 많다. 영어를 쓰지만 이 지역만의 언어가 있고. 발음도 달랐다. 잉글랜드에서는 영어를 들을만했는데 여기서는 스타벅스 가서 핼러윈 데이를 맞이해 호박 커피를 주문하려는데 마시고 갈 건지, 테이크 아웃할 건지 그 말도 못 알아듣겠더라.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 말도 더 안 나오고.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점원의 답답해하는 표정을 보니 마음도 위축됐고.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잉글랜드에서 접한 사람들은 예상치 못하게 친절했는데 여기서는 까칠하게 느껴졌다. 스타벅스만 그랬지만.

1번 헤이마켓 일대. 2번 스마트 카드 리더기. 3번 숙소. 4번 프린세스 스트리트의 스캇 기념탑. 5번 관광지 안내. 6번 스타벅스 에스프레소 컵과 호박 커피. 사진=딱정벌레

이 지역의 첫인상은 고즈넉하고 차분했다. 길도 깨끗하고 정갈했다. 그러나 런던과 비교하면 정은 덜 갔다. 런던은 시끄럽고 난잡한 느낌이었는데. 깔끔한 모범생이 날라리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달까. 길에 사람도 적었. 역에서 트램을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스마트카드를 리더기에 댄 다음, 트램을 타는 식이었다. 트램에는 자전거 두대를 실을 수 있고. 런던 지하철 역처럼 여기도 트램에 직원과 승객에게 모욕을 주거나 괴롭히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었다. 20분쯤 가서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에든버러에서도 우리 숙소는 도심에 있어서 주요 관광지와 가까웠다. 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트램은 공항과도 연결됐다. 숙소 주변에서 출발하는 공항버스도 있고.

숙소는 오래된 느낌이었지만(심지어 이름도 올드 웨이벌리) 나름 멋도 있었다. 바깥 전경도 보기 좋았고. 스캇 기념탑은 길 건너면 바로 있고. 외사촌 동생은 처음에 에든버러 여행이 금방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에든버러에 3일 머무를 예정이었다. 사실상 2일이고, 3일째 되는 날은 떠나는 날이지만. "금방 끝날 거면 글래스고가 여기서 기차로 1시간 거리니까 다음 날 거기 가지 않을래?"라고 말했더니 녀석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피곤했을 테고, 자신 없었던 것 같다. 돌아보니 미안하다. 영국에서 스마트 도시로 유명한 지역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글래스고라서 한 번 던져봤다. 하이델베르크가 중세 도시 느낌이 강했는데 에든버러도 그랬다. 오래된 성이 있고, 건물도 모두 고풍스럽다. 예쁜 도시다. 여긴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들었다. 한국인 관광객도 다른 지역보다 많이 보였다. 작은 왕국 같은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에든버러에 가면 좋을 듯하다. 북쪽이라서 더 쌀쌀하다.

1번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를 쓴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 2번과 4번 카페 기념품. 3번 i Zettle 카드 리더기. 사진=딱정벌레

에든버러는 해리포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 롤링 작가가 에든버러의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에서 해리포터를 집필했고. 영화를 이 지역에서도 촬영했다. 다이애건 앨리 등? 옥스퍼드처럼 곳곳에 해리포터 흔적이 있었다. 우리도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에 가려고 했다. 거길 향하는 길에 해리포터 기념품 매장이 있어 잠깐 들렀다. 이제 한국에서도 해리포터 기념품을 많이 팔아서 영국에 특별한 게 더 있어 보이지 않았다. 2001년에 해리포터 영화가 개봉했는데 그때 친구가 내게 퀴디치 경기용 빗자루인 '님부스 2000'을 선물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말 듣고 설레서 내가 님부스 2000으로 바닥을 쓰는 꿈마저 꿨다. 빗자루는 못 받았지만.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는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카페 간판 아래에는 '해리포터 탄생지'라고 쓰여 있었고. 매장 건물 밖에는 에든버러 캐슬이 보이는 자리에서 롤링 작가가 해리포터를 썼다는 안내가 있었다. 롤링뿐만 아니라 랜킨, 맥콜 스미스도. 매장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1파운드를 내라고 했다. 이 가게에서 쓰는 POS 기였나 카드 리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흰색이었는데 그해 페이팔에서 인수한 회사인 'i Zettle'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때는 그런 거나 눈에 띄었다. 유럽에서 주로 활동한 회사였던 것 같다. 코끼리 피겨, 엽서, 모자 등 카페 기념품도 팔았다. 이 카페에는 자리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한 자리 맡았고 앉아서 음료와 디저트를 먹고 갈까 했는데 당근 케이크를 포장해서 나왔다. 그전에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마시기도 했고.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 내부. 사진=딱정벌레

그걸 들고 카페에 가기 전 지나쳤던 스코틀랜드 국립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계단에는 데이비드 흄의 어록이 쓰여 있었는데 인상적인 내용이었다. "문학은 내 인생의 지배적인 열정이었다(The literature has been the ruling passion of my life)"라고. 열람실에 출입하려면 등록 카드가 있어야 했다. 열람실에서 해도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안내가 있었는데 허가 없이 사진을 찍으면 안 되며 날카로운 물체와 외투, 우산 반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도서관에는 카페와 전시관, 식사하는 장소, 기념품 매장이 있었다. 마침 '세상을 흔든 아이디어'라는 전시가 열렸다. 우린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전시만 둘러보고 관내 시설을 구경한 뒤, 지정된 식사 장소에서 당근 케이크를 먹었다. 케이크가 엄청 달았다. 둘 다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관광해서 그런지 조금 까칠해진 듯했다. 여행하면서 외사촌 동생과 한 번도 싸우지는 않았다. 한 살 터울이고 커서는 자주 연락하거나 얼굴을 보는 건 아니지만 어릴 때 잘 놀았던 터라 큰 문제는 있지 않았다만. 서로 '뭐 어쩌라고'하는 상황이 있을 뻔했는데 그냥 지나갔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가 스코틀랜드 출신인 건 미처 몰랐다. 도서관 전시를 보고 여기가 수많은 지성인의 출신지역임을 알았다. 아담 스미스는 에든버러 출신이기도 한데 동상도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나와도 셀카를. 후후. 어디서 읽은 내용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야기 맥락이 생략되고 왜곡됐다고 들었다. 우리가 늦은 오후에 여행을 시작해 원래 계획했던 주요 관광지는 이날 갈 수 없었다. 오후 5시에 문을 닫았다. 에든버러 캐슬, 작가박물관, 위스키 박물관이 그랬다. 내일을 기약하며 캐슬 앞에서 사진만 우선 찍었다. 캐슬로 향하는 로열 밀스 거리에는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인 킬트를 입은 남성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에든버러 구시가지 하이 스트리트 일대. 1번 아담 스미스 동상, 2번 하이 스트리트 풍경. 3번 성 자일스 대성당. 사진=딱정벌레

대신 칼튼 힐 언덕에 올랐다. 칼튼 힐은 3억4000만년 전에 화산 활동으로 생긴 언덕이었다. 1724년 에든버러 타운 의회가 이 언덕을 사서 영국 첫 공공 공원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에든버러 구시가지, 신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에든버러에는 이런 언덕이 여럿 있었다. 다음 글에서 이야기할 거지만 아서스 시트는 칼튼 힐보다 풍경이 더 멋졌다. 에든버러 여행 첫째 날에는 피곤하고 마음이 움츠러들어서 여행이 유쾌하지만 않았다. 그러나 아서스 시트에 오르고 나서 비로소 이 지역에 재미를 느꼈다. 그전까지는 '잉글랜드 그리웡' 이런 마음이었고. 그래도 사진을 보니 푸른 평원이 마음에 든다. 칼튼 힐에서 사방으로 풍경을 감상한 뒤 외사촌 동생과 저녁을 먹으러 내려왔다. 옥스퍼드는 조금 달랐지만 런던 같은 큰 도시에서는 밤도 화려하고 왁자지껄했는데 여긴 굉장히 조용했다. 문 닫은 상점도 많고.

식당에 가는 길에 위워크를 발견했다. 내부를 보지는 못했지만 건물 외관만 봤을 때는 위워크도 지역 분위기를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고풍스러워 보였고 위워크 글씨체도 고전적으로 보였다. 원래 쓰던 것과 똑같은데. 우리는 스테이크를 먹으려 했는데 처음에 가려고 했던 곳은 너무 비쌌다. 식당을 찾으러 계속 걸어가는데 인적도 드물어서 무서웠다. 다행히 괜찮은 곳을 하나 발견했다. 이름이 밀러 앤 카터 스테이크 하우스. 거기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했다. 스타벅스에서 까칠한 점원을 만나고 둘 다 마음이 위축됐다. 그래서 이 식당에서 주문할 때는 서로 약간 긴장하기도. 점원이 생각보다 살가워서 마음을 놓았다. 여행 와서 현지인 불친절에 쪼는 모습이라니. 외지인이라서 별 수 없다.

칼튼 힐 풍경. 1번은 칼튼 힐 가는 길. 사진=딱정벌레

저녁을 먹고 기념품 가게를 둘러본 뒤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돌아보니 그 숙소 창가가 마음에 들었다. 창이 있고 위에 걸터앉는 공간이 있었다. 외사촌 동생은 숙소 창가에 올라가서 몇시간동안 쪼그리고 앉아 밖을 내다봤다. 어릴 때 책상 밑에 들어가 노는 게 좋았던 것처럼 걔는 거기 앉아서 노는 게 편하고 좋았나 보다. 이날은 이동하느라 피곤했다. 이제 돌아갈 준비도 슬슬 해야 해서 그날은 정신없이 잠들었다. 여행을 시작하면 시작하는 대로, 끝나가면 끝나가는대로 갈 준비 하느라 마음이 조급하다. 영국에서 일주일을 지내도 방문 지역이 다 초행길이다 보니 늘 새로웠다. 그중에서도 에든버러가 가장 어색했다. 다음 날은 좀 더 즐겁고 마음 놓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1번 저녁을 먹은 밀러 앤 카터 스테이크 하우스. 2번 저녁으로 먹은 스테이크. 3번 숙소가 있는 프린세스 스트리트 저녁 풍경. 사진=딱정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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