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기 가장 좋은 장소
교토에 출장을 가면 으레 들리는 커피집이 있습니다. 1970년에 개업해 오늘날까지 무려 50여 년간 그 자리를 꾸준히 지켜오고 있는 이노다 커피 산조점입니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을 읽기 가장 좋은 장소로 '1968년 봄, 대학 진학을 위해 새로 마련했던 거처에 있던 매트리스 위'라고 했다죠? 저는 커피를 마시기 가장 좋은 장소로 항상 이노다 커피 산조점을 꼽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책을 읽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는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1968년 4월 저 휑한 방에 있던 딱딱한 매트리스 위'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작품의 한 줄 한 줄이 마음에 잔잔하게 스며드는 장소- 그런 장소가 즉 내게는 '서재'이다. 임즈의 라운지 체어와 모빌리아의 스탠드와 AR 스피커에서 조용하게 흘러 나오는 텔레만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다. 존 업다이크를 읽기 위해서는 존 업다이크를 읽기 위한, 치바를 읽기 위해서는 치바를 읽기 위한 가장 좋은 장소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란, 기분이 든다.
-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 수첩> 中 -
하루는 교토에 거주하는 지인과 함께 이노다 커피 산조점을 들린 적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줄곧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지인에게 통역을 좀 해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어쩜 커피를 이렇게 맛있게 만드세요?" 초로의 바리스타는 옅은 미소를 띄며 말을 건넸습니다.
"커피를 추출할 때 물의 온도, 원두의 양, 추출하는 시간 등을 정확히 엄수합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이건 과거 선배들에게 전수 받은 마법의 주문인데요, 커피를 추출할 때 마음 속으로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끊임없이 주문을 외워요."
저는 어떤 커피집을 가더라도 '커피맛'에 대해선 평가를 하지 않을려고 노력합니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호사러움을 누리기 위함인데 커피 한 잔을 두고 맛을 평가하는 건 좀 심한 처사라고 할까요. 그 대신 가급적이면 공간의 분위기를 살펴보곤 합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좋은 감흥을 주는 곳이라면 기둥에 칠해진 페인트색 조차도 마음에 들기 마련이거든요.
이노다 커피 산조점이 '커피를 마시기 가장 좋은 장소'가 된 이유는 공간의 분위기가 일깨운 감흥 때문이었는데 그날, 그의 대답을 듣고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부터 느껴왔던 감흥은 그의 몸짓과 손짓, 눈빛에 스며 있던 친절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2020.12.17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를 읽다가, 문득 이노다커피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