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어렸을 때, 백원 이백원이 소중했던 나이.
천원 이천원의 용돈과 세뱃돈을 모아 구입했던 나의 자전거는 나에게 꽤 큰의미였다.
20년 전 나의 첫 통장에서 차곡차곡 모았던 7만원 남짓의 쌈짓돈을 출금해서
부모님과 내 첫 새 자전거를 구입하러 갔던 순간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누가 보기에도 멋진 신상 자전거를 사기에는 택도 없는 금액이었기에 가장 특가로 나와있는 자전거를 구매할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특가가 아닌 특별한 자전거였다.
자전거를 구입하고, 내 몸보다 큰 자전거를 이고지고 집 안 베란다까지 들이는걸 수십번 반복하다가
처음으로 자전거 보관대에 보관하는 날, 누가 훔쳐갈까 누가 더럽힐까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엄마 심정으로 한 초등학생은 길고 긴 밤을 보내곤 했다.
그러던 초등학생은 어느덧 자라 내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대신 자전거 열개정도 살수있는 월급을 얻는 직장인이 되었다. 어느때는 밥한끼에 과거 자전거 한대정도 되는 돈을 쓰며 그날의 화를 삭히기도 했고, 어느 때는 친구의 뽀얀피부를 보며 일주일이면 먼지가 뽀얗게 앉을 비싼 크림을 사기도했다.
또 어느때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의식하기도했다. 아무리 팩트를 두드려도 나오지 않는 명품 팩트를 들고 다니며 시도때도 없이 거울을 보고, 아울렛에서 갚을 수있는 할부금으로 살수있는 실용성은 빵점인 명품가방을 정신승리를 거듭하여 사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작은 1.5룸에 가득 차있던 물건들을 보며 이 많은 나의 물건 중 진정한 나의 물건이 무엇일까 생각이 들었다. 소유는 내것이지만 내 손이 쉽사리 타지 않는 물건들 뿐이었다. 눈가 주름이 걱정되는 마음에 충동적으로 구입한 아이크림(일주일도 꾸준히 못바르고 말았다.), 내 넓어진 모공을 줄여줄 줄 알았던 여러 팩들, 귀엽다는 이유로 구입했지만 들때마다 엄청난 탄성으로 못드는 니트 가방, 일년에 한번 입을까 말까한 레이스 블라우스 등. 사실 나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단조로운 사람이어서 맨날 매던 가방만 매고 매일 입던 옷만 입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 방에는 내가 매일 사용하던 물건보다 일년에 한번 사용할까말까한 물건들로 가득차 있는 상황이라, 그거야 말로 아이러니의 극치였다.
이런 이상한 상황을 깨닫고 내가 한 첫번째 정리는 화장대였다. 받아놓고 쓰지는 않는, 언제가는 쓸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유통기한이 지나 쓰지 못하고 쌓아둔 샘플들, 항상 두세번만 사용하고 더이상 사용하지 않은채 딱딱하게 굳은 팩들, 화장품가게의 적나라한 조명과 거울들로 낮아진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샀던 여러 에센스와 크림들까지. 성인이 된 딸을 위해 엄마가 사줬던 공주풍 화장대는 어느덧 쓰레기장이 된지 오래였다.
진흙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듯, 쓸만한 걸 한개두개씩 골라내고 이미 회생불가의 것들은 미련없이 떠나보낸 후 소수 정예원들만 모아둔 내 화장대를 보니 과연 이걸로 생활이 가능할까 했다. 갑자기 여드름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주름이 자글자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서기도했다.
그리고 나의 소수 정예 화장품들을 하나씩 꼼꼼히 써나갔다. 퇴근길에 항상 반짝반짝하며 나를 부르는 올리브영의 유혹을 이겨내고 토너한병 로션한병 크림한통을 써나갔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 쓴 공병을 나에게서 떠나보내며 그 다음 화장품을 진심을 다해 구입했다. 사는 순간 이 물건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나와 함께 갈 나의 멤버니까라는 마음으로 여러개 테스터도 하고, 싸다고 사지도 말고 할인을 안하더라도 정가로 구입을 하기도 했다.
나의 물건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물건, 나와 함께할 나의 물건. 내가 아니면 소중할 대해줄 이 없는 내 것이다. 이 마음가짐을 깨닫는 순간 여태까지 물건을 대하 나의 자세는 백팔십도 바뀌었다.
첫번째, 나의 물건에 이름을 적어놓는다.
나혼자 사는 집이면 상관이 없겠지만, 다수가 생활하는 사무실의 경우, 내 손이 닿는 나의 물건에 이름을 적어 놓는다. 포스트잇, 연필, 볼펜, 핸드크림 등등 여기까지?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소소한 물건에 내 이름을 적어 놓는다. 견출지에 내이름을 적어넣고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시키며 내 물건이라는 소속감과 가치를 부여한다.
두번째, 처음과 끝을 함께한다.
처음 포장지를 뜯는 순간부터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한순간까지 함께 한다. 내 이름을 적으며 내 물건이라고 정의한 순간부터 마지막 내 이름이 적힌 장만 남은 포스트잇을 버리는 순간이란,
핸드크림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 써서 더이상 분리수거 고민을 하지않아도 되는 순간이란!
내 물건은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해 불살라졌다. 그리고 나는 내 물건에 대하여 예의를 다했다.
세번째, 내 물건을 관리하고 고친다.
내 물건에대한 인식이 바뀌고, 더 이상 특가라는 이유로, 만원이라는 이유로 옷을 구매하지 않게되었다. 그래서 평소 동경하던 브랜드에 가서 흰색 셔츠를 사서 한철 신나게 입었다가 다음 해에 그 옷을 다시 꺼내본 후 나는 기겁을 했었다. 새하얗던 나의 셔츠는 온데간데 없고 누런색만 띌뿐이었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옷을 소유하려면 구매하는 능력에 한하는게 아니라 관리하는 능력도 중요한 것이구나! 그리고 당장 네이버 블로그와 유투브를 뒤져 다시 옷을 하얗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 실행에 옮겼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내가 관리를 하지않으면 헌 것이 되고만다. 손 때가 탄 것과 신경쓰지 않은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과탄산소다로 세탁하는 작은 방법으로 내 옷은 다시 살아나고 나의 손길 몇번으로 다시 빛을 발한다.
이런 자세로 내 물건을 대하다보니, 자연스레 내 물건에 애착이 생기고, 내가 신경쓸 수 없는 범위의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 물론 새 물건에 대한 설레임을 갖게되는 기회가 줄어들어 아쉽긴하지만 그래도 간혹 새 물건을 들일때면 그 설렘은 다른 사람보다 몇배는 더 강하다.
가끔 주변 지인들이 더이상 못쓰게 된 나의 물건을 보며 미피야 그건 물건이 자살한거야 이제 그만 보내줘...라고 할때나 그건 우리할머니나 하는 건데 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그땐 가끔 내가 너무한가 생각도 들지만, 그런 말들은 잠시일 뿐이고, 내 물건과 내가 함께한, 할시간은 길고 길다.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