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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와 달 Aug 04. 2020

순전한 그리움이 되는
충만한 기쁨의 순간


오늘은 서울의 어떤 공간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에 막연한 불안을 안고 걷는다는 건, 단지 하나의 흔한 문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흔한 숙명이다. 


도미니카공화국 Bayahibe의 내가 가장 사랑한 공간, 나무 판교


그래도 이제는, 조금 단단해졌는지, 아니면 단단해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선지 오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밤의 요가를 하고 지난 2년의 사진들을 뒤죽박죽 보는데, 따뜻한 사람들과 참 좋은 시절을 보내었구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랑하는 친구들, Annie와 Edriam이 내가 volunteer 하며 지내는 호스텔에 함께 방문해준 나날들


지나온 과거가 상처가 아니라 살아갈 힘이 되는 마법은, 그 순간을 함께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안부를 주고받는 가까운 친구든, 혹은 이름 모를 거리의 친구든, 그들과 함께 걸었던 길이 여전히 그 색채를 간직하고 있다. 


쿠바 하바나 길거리에서 만난 할아버지, 그는 그저 기쁨을 위해 노래를 선물해주었다.


충만한 기쁨의 현재는 시간이 지나 과거가 되면, 순전한 그리움으로 열린다. 그것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마음도 아니며, 그때 그 순간을 조금 더 만끽할 걸 후회하는 마음도 아니다. 인간이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늘 그리워하듯, 순전한 그리움은 과거의 순간 그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는 마음이다. 이미 충분히 그 과거의 순간을 만끽했기에 후회가 피어날 자리가 없다. 순전한 그리움으로 맺힌 그 충만한 기쁨들을 기억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힘에 가깝다.


유달리 비가 많이 오는 7월의 끝무렵, 친구들과 전라남도로 떠난 여행 차 안에서


그렇게 순전한 그리움의 소중한 과거가 될 수 있는 현재는, 언제나 존재한다. 세상의 어떤 도시에서도, 어떤 길 위에서도,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아마 가깝게는, 지난주 전라남도로 친구들과 함께 떠났던 너무 깊이도 소중하게 즐거운 순간이 곧 순전한 그리움으로 새로이 태어날 것이다. 비가 무척이나 많이 오는 나날이지만, 우리는  함께 있어 괜찮았다. 소원이 있든 없든, 함께 담양의 한 언덕을 세 번 돌며 우리는 즐거워했다. 아마 내가 빈 소원은 그것이었지 않을까. 그렇게 그 순간 우리가 함께 웃을 수 있길. 


평일 낮 3시, 학교의 한 언덕 위. 나무 아래에서 오후의 햇살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이다.


충만한 기쁨의 현재가 순전한 그리움으로 다시 태어나는 하루들이 이어지길. 

그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보듬을 수 있고, 추억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길. 

불안과 슬픔을 잊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안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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