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코딱지

by 무딘식칼

오늘은 옛날로 돌아가서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이야기를 좀 하고 넘어가려 한다.

나는 순댓국을 엄청 좋아했었다. 순댓국의 순대도 좋았지만 돼지 부속품이라고 해야 하나? 돼지 간, 귀 머리 고기들의 평상시 먹던 육고기의 질감 외에도 그 깊은 맛이 좋았다.
요즘처럼 순댓국 체인점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순댓국은 그리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는데,

내가 아홉 살 쯤이었는데, 우리 집은 연립주택이었고 그 연립주택 앞으로 왕복 2차선 도로가 있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우리 집 쪽은 좀 잘 사는 집들이 모여 있었고, 반대편 도로 쪽은 조금 형편이 어려웠던 동네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는 거지, 당시에는 그런 걸 잘 몰랐다.)

슬라브지붕에 시멘트벽돌로 지은 집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길가쪽에 한 집이 앞쪽에 낮게 있던 담벼락을 허물고 간판을 내더니 장사를 시작했다.

간판에는 이름도 없이 순댓국이라고만 쓰여 있었고, 창문에는 빨간 페인트로 ‘족발, 머리고기’라고 씌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기 시작했고 까맣고 커다란 무쇠 솥이 걸리고 밤 낮 없이 불을 때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인아줌마가 빨간 손잡이가 긴 바가지로 국물을 휘휘 젓는 장면까지 따라붙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아침 등굣길에는 그 집 앞에서 아저씨가 빨간 고무 다라에 한가득 담긴 돼지발을 정성 들여 면도하듯 털을 밀고, 남은 털은 가스불로 지져 태운 뒤 뽀얗게 닦아내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징그럽다며 꺄꺄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거나 반대편 도로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그 돼지 털을 불로 지지는 것을 보고 아빠 다리의 털도 그렇게 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렇게 했다가는 매타작였겠지만...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냄새를 맡았다. 구수하고, 돼지 얼굴에 가까이 코를 대고 맡는 듯한 고소름한 냄새에 반하곤 했다.

그런 날이면 저녁에 엄마를 졸라 양은냄비를 들고 “순댓국 3인분이요!”를 외치곤 했다. 3인분을 시켜도 다섯 식구가 먹고도 다음날 아침에 내 몫으로 한 그릇이 더 나올 만큼 넉넉한 양을 담아주시곤 했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양이 넉넉했던게 아니라 잘 안먹는 두 동생덕에 내 몫이 늘었던거같다. )

하교길, 순댓국집 앞에서 아줌마가 검은 무쇠솥 뚜껑을 여는 순간 그 고소하고 눅진한 냄새가 더 낮게 내려앉았다. 비 때문인지, 눅눅한 공기 때문인지 그날따라 냄새는 유난히 진하게 코끝을 붙잡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침을 꼴딱 삼키며 집으로 뛰어가 엄마를 졸랐다.

양은냄비와 몇 장의 돈을 받아 들고 다시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냄비 가득 담아주시던 아주머니의 국자질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아줌마, 돼지 귀 많이요!” 하고 외치면,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주머니는 누르스름하고 고린내가 날 것 같은 누런 배보자기를 걷어냈다.

바가지머리에 똘망똘망하게 생긴 애가 돼지 귀를 외치니 꽤나 웃겼던 모양이다.

그 안에는 아주머니처럼 웃고 있는 돼지머리가 놓여 있었다.
아주머니는 커다랗고 검은, 하지만 칼날만은 파리하게 빛나는 엄청난 칼로 돼지 귀를 한 칼에 잘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돼지 코는 안 먹니?”

돼지 귀는 먹어봤지만 코는 기억이 없어서,
“돼지 코도 먹나요?” 하고 되물었다.

아주머니는 씩 웃으며 다시 보자기를 열고 돼지 얼굴을 보여주셨다. 나는 그때 돼지 얼굴을 아주 근접해서 처음 보았는데 살짝 충격적이었다. 내가 알던 돼지 얼굴이 이랬던가 싶을 만큼, 돼지 얼굴을 그리면서 언제나 동그라미에 동그란 콧구멍 두 개를 그리는 게 전부였는데 입체적인 얼굴을 보니 돼지 코는 정말 높고 길었다.

“어때, 좀 썰어 줄까?”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는데, 그때 처음으로 나는 먹는 걸 거부했던 것 같다.

“아… 아니요. 지금 귀 하나 없는 걸로도 된 것 같아요.”

아주머니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 웃으셨다. 나는 애써 돼지의 얼굴에서 코까지 잘려나가면 너무 불쌍해 보일 거 같아 그렇게 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코가 잘린 돼지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내가 돼지코를 거부했던 건 잔혹해서가 아니었다.
아홉 살 나이에, 코를 손가락으로 파며 코딱지가 더럽다며 깔끔을 떨기 시작하던 때였다. 왠지 돼지 코 안에도 코딱지가 가득 들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단지 돼지의 코딱지까지 굳이 먹을 이유가 없었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아마 그날 이후로도 소의 혀, 뇌 등등 여러가지 부속고기를 먹으면서도, 돼지 코는 시도하지 않았다. 웃고있는 돼지에게 미안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세상이 정한 기준보다 내 안의 ‘코딱지’ 같은 기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산다.
무딘식칼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가끔은 아주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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